그의 사정

by 청운서점

나는 조류 공포증이 있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치킨을 잘 먹지 못한다.


길 위에서 비둘기를 만나는 날이면

상황은 더 난감해진다.


길 한복판을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거나,

여러 마리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으면

나는 그만 일시 정지 상태가 된다.

길이 열릴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거나,

정말 곤란할 때는 먼 길을 빙 돌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거리 곳곳에 붙은

“유해 조류인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마음속 깊이 공감하곤 했다.

‘암, 그렇고말고. 유해하고 말고.’


그러던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평소 보던 비둘기보다

몸집이 조금 작은 녀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낯설고 서툰 몸짓.

가만 보니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 비둘기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짧은 드라마 한 편이 스쳐 지나갔다.

비둘기 연인이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

둥지 속에서 정성껏 알을 품었을 시간들.

그리고 마침내 깨어난 아기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워냈을

그들의 생애가 그려졌다.


단순히 혐오스럽고 유해한 객체로만 여겼던 존재가

서사를 입는 순간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예전처럼 마음껏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래, 너희도 다 그만한 사정이 있겠지.


하지만 나에게도

나만의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

서로의 평화를 위해

적당히 거리를 두며 살기로 하자.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