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마음은
지독한 화이트아웃(Whiteout) 상태다.
눈폭풍 속에 갇혀
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지워진 풍경.
두려운 건 지금의 막막함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영 길을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서늘한 예감이다.
나아가기 위해
습관적으로 내비게이션을 켜보지만,
무심한 기계음은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경로를 찾을 수 없습니다.”
새로고침을 누르고 또 눌러봐도
화면 위엔 붉은 경고등만 선명하다.
고립의 한가운데서,
역설적이게도 가장 뜨거웠던 기억 하나가
눈 위로 번져온다.
“어머니, 저를 동아줄이라고 생각하세요.
이런 기회, 자주 오지 않아요.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줄을 제발 놓지 말고 올라오세요.”
그 아이와 가족에게
든든한 동아줄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계절들.
줄이 닳아 끊어질 듯 위태로운 날도 있었고,
스스로 쥔 손을 놓으려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와 가족은 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함께 빛을 향해 기어 올라왔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었던
그 단단한 생명줄.
누군가에게
동아줄이 되어준 적 있다는 사실을 복기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눈 속에서 옅은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과 무력감으로
먹통이 되었던 나의 내비게이션이
천천히,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생을 끌어올려 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 또한 그럴 자격이 있을 테니까.
이제 나 자신과 가족에게는
겨우 매달려 버텨야 하는 거친 줄이 아니라,
가장 안락하고 단단한
엘리베이터가 되어주어도 좋지 않을까.
눈폭풍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를 평온한 곳으로 데려다 줄 ‘엘리베이터’를 향해
새로운 목적지를 입력하고 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이번엔 나를 구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