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사람 사는 곳이긴 하다
시간은 너무나 빨라 미국에 온 지 벌써 2년 반이 다 되어 간다. 지금은 익숙해진 모든 것들이 그때는 낯설었던 것을 보면, 의미 없이 보낸 시간들은 아니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준비 없이 미국에 떨어졌다. 그나마 전 세계 도시들 중 한인이 가장 많다는 도시 로스앤젤레스였지만 그 많은 한인 중 내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예전부터 "나성에 가면 편지를 보내세요"라고 했던 그 나성에 내 나이 46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앞으로 살아갈 집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미국에 왔고 그날 처음으로 집에 들어가던 순간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최근 한국인들에게 안전하고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인기가 치솟고 있는 캘리포니아 Irvine. 그중에서도 고속도로와 가깝고, 마트 등 각종 편의시설이 다 있는 곳에 남편이 렌트하우스를 구해두었다.
한 달 전에 이미 한국에서 배편으로 보낸 이삿짐은 운송업체의 창고에 잘 도착해 있었고, 다음 날이면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도착한 날 밤은 아무것도 없는 집이라, 카펫 바닥에서 비행기에 싣고 온 전기장판을 깔고 세 식구가 캠핑모드로 잠을 자야 했다. 하루 정도는 괜찮았다. 미리 준비해 온 라면과 햇반, 레토르트 장조림으로 저녁을 먹고, 한국의 아파트와 비교해서 천장이 높고, 수납공간이 넓은 타운하우스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그 다음날 이삿짐이 들어왔는데, 침대 및 큰 가구를 제외하고도 이삿짐 박스가 200개가 넘었다. 짐을 다 처분하고 왔다고 생각했건만.. 그렇게 박스가 많을 줄은 몰랐다. 한국 이삿짐 시스템과 또 다른 점은 짐을 절대 풀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풀어주더라도 못 믿을 판이었다. 이사 시스템은 정말 한국이 최고 중에 최고다.
멕시칸 인부들이 하는 일은 박스를 일층과 이층에 나누어 천정까지 쌓아주는 일뿐이었다. 한국에서도 이사를 다녔지만 포장이사에 익숙했던 나는 그 뒤로 일주일간 멘붕에 빠진 정신줄을 부여잡고 이삿짐을 풀고 정리하느라 너무나 바빴다.
그 다음날 당면한 문제는 가스불이 커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흔하게 쓰는 인덕션이 뭔가... 불꽃을 튕겨야 불이 켜지는 가스레인지가 이곳은 일상이었다. 가스 공급에는 문제가 없는데 불꽃 튕기는 곳이 망가져서 불이 안켜지는 것으로 보였다. 집주인에게 연락했더니 기술자를 보내준다고 했다.
일주일 간 부루스타를 사 와서 임시로나마 사용했는데, 이 불꽃 튕기는 곳을 수리하는 기술자가 온다고 했던 날 우리 집 문 앞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가버렸다. 아무런 설명이나 기약 없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2주 만에 다시 나타난 그는 30분 동안 불꽃 튕기는 곳을 고쳐주고 집주인에게 300달러를 청구한다고 했다!!!!
다 때려치우고 저 기술을 배울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한 두 달 동안 여기가 미국이로구나 하는 순간이 줄 줄이었다.
사회 보장번호(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것으로 다양한 곳에 쓰인다)를 받으러 찾아간 동네 주민센터는 아침 8시부터 건물 앞 주차장까지 줄을 서서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일 처리 속도가 놀랍도록 느려 터졌는데도 줄을 서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는 아저씨에, 아예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와서 그 의자에 앉아 신문 보는 할머니까지, 아무도 왜 빨리 일을 처리하지 않냐고 불평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빨리빨리 일을 처리해 주는 한국의 주민센터가 눈물 나게 그리운 순간이었다.
면허증 시험을 칠 때도 한국이 그리웠다. 캘리포니아는 한국 면허증이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 주(State) 중 하나라서 면허시험을 다시 봐야 했다. 필기를 온라인으로 보고, 실기시험을 보러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로 갔는데, 이곳도 줄 세우기와 세월아 네월아는 마찬가지였다. 거의 종일을 DMV에서 보내고 나서, 한국에서 살던 인내심을 가지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환경임을 그제야 깨닫고 하는 수 없이 내 인내심을 조정하기로 결심했다.
한국과 가장 달랐던 또 다른 점은 편의점이 없다는 거. 슬리퍼를 끌고 동네 편의점에서 쉽게 뭔가를 샀던 서울에서의 기억은 첫 몇 달의 내 미국 생활을 너무나 힘들게 했다. 마트에서 딱 한 개만 사야 하는 게 있어도 차를 타야 했다. 5분이건 10분이건 차를 타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곳이었다. This is America!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모두가 이곳에 살고 싶어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응기는 필요했다. 낮에는 정말 살이 타들어갈 정도로 햇살이 강했다. 그러다 해가 지면 늑대가 나온데도 믿을 만큼 깜깜이었다. 사실... 늑대는 아니지만 코요테는 정말 나오는 마을이었다. 대부분 사람을 해치거나 하진 않고 그냥 동네 개처럼 돌아다녔지만, 그래도 맹수다. 덩치가 작은 반려견들은 공격하기도 한다니 밤에는 산책로를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기는 했다.
2년 여가 지난 지금, 이제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고 산책로에서 눈이 빛나는 코요테와 마주쳐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심지어 퇴근길에 주차장에서 자주 목격되는 코요테를 만나면 잘 지냈는지 궁금하고 반갑기까지 하다. 하하하
불편하기는 하지만, 먼저 필요한 것을 적었다가 장을 보는 효율성도 장착했다. 주민센터에서 아침 8시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놀라지 않고, 지금은 같이 줄도 서고 빵도 나눠먹고 스몰톡도 하면서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의 적응기를 거치는 중이다.
This is America이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 늘 길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