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산다는 것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다.

by Alex in Irvine

"어머, 너무 부러워요. 좋으시겠어요"

미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 째 되던 날, 몇 가지 (새것과 마찬가지이던) 소형 가전제품들을 넘겨주셨던 분이 내게 했던 말이었다. 그분은 남편이 UC Irvine에 교환교수로 와서 1년을 지내다 살림을 정리하고, 며칠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캘리포니아 어바인은 단기로 6개월-1년씩 지내가 가는 한국분들도 많아서, 특히 드라이기나 토스터기 같은 소형 가전제품들은 중고거래가 활발하고 물려 쓰는 경우도 많다. 그날 거래를 하면서 세탁 세제나 고무장갑 등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살림들도 같이 챙겨주시면서 부럽다는 말을 남기셨는데, 2년도 더 지난 지금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진심으로 부러워하셨던 그 맘을 느꼈던 것 같다. 일 년 사계절이라는 시간은 해외생활에 길다면 길지만, 아쉬움이 남는 기간이기도 하다. 특히 기간이 정해진 채로 생활환경이 좋은 곳에서 지내다 보면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도 아쉽기도 했을 것이고.


그분이 부러워하던 캘리포니아 Irvine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지만, 살면 살수록 미국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을 하게 된다.


우선 좋은 점부터..

날씨와 자연은 천연의 혜택이다. 사계절 내내 대부분이 날씨가 좋다 보니, 아웃도어 액티비티가 매우 흔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폭이 열려있는 점이 가장 좋은 점이다.

언제 어디서든 맘만 먹으면 뛰고 걷고 골프도 치고 해양스포츠도 즐길 수 있다.

물론 이 좋은 자연을 즐기기 위해, 세금을 무지하게 많이 내야 하고, 물가가 비싼 것은 감당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타주와 캘리포니아의 생활물가 차이를 보게 됐는데, 미국 연방 통계청이나, 다른 사설 물가 측정 기관에서도 캘리포니아가 10-20% 정도는 생활물가가 비싸다고 나와 있다. 전기세, 물세, 도시가스요금 같은 기본적인 공과금부터, 주거비용(월세, 주택가격)도 훨씬 비싸다. 우리로 치면 한 25평짜리 집의 월세가 3,000달러(한화로 400-450만원 정도)에 육박하니 어마어마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처럼 이런 물가를 감당한 대가로 일 년 내내 화창한 날씨를 즐기는 날이 많다.


또 하나는 캘리포니아에는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의 비율이 높은 곳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LA는 전 세계 도시 중 한인비율이 가장 높고, 내가 살고 있는 Irvine은 동양인이 전체 인구의 50%가 넘는 동네이다. 단순히 나와 외모가 닮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 좋다는 점보다, 그만큼 아시안 음식이나, 슈퍼마켓, 생활용품들에 대한 접근이 쉽다는 의미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이곳이 미국인지, 아시아인지, 한국인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시안의 비율이 높아, 차별은커녕 오히려 노란 머리 파란 눈 현지 미국인들이 소수로 느껴질 지경이다.

특히 한류가 대세인 요즘은 심지어 어떤 미국마트에 가도, 신라면과 불닭볶음면, 김치, 두부, 김, 햇반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

향수병이 도진 어느 날, 손도 까딱 하기 싫었는데 퇴근길에 집 앞 미국 마트에 들러 인스턴트로 포장된 떡볶이를 해 먹고 기운을 차렸던 적도 있다.


날씨 탓인지 모든 일상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도 장점이자 단점이다. 워라밸이 서울보다는 잘 지켜지는 점이 있고, 근무시간 이후에 업무를 한다는 것이 매우 특별한 경우로 여겨지는 대부분의 인식 때문인지 삶 자체를 즐기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있다.

이런 부분은 개인의 개성과 개인의 시간을 존중하는 문화로부터 비롯되기도 하는 듯 하다.

어떤 일이든 개인의 의견을 무조건 우선시한다. 하다못해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부여할 때도 주니어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본인의 의사나 의견을 물어보고 존중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점이 내가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적응하는데 힘든 점이기도 하다. 외국계 회사에서 오래 일했던 나도 "까라면 까야지"라는 월급쟁이 직장인 정신이 있는데, 이곳 직원들은(한국인이라고 할지라도) 세대차이라고 하기에는 이런 점에서 너무나 큰 갭을 느낀다.


불편한 점도 물론 많다..

우선 가장 처음으로 느끼는 불편함은 식료품을 비롯한 모든 제품의 배달 시스템이 한국만큼 편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모든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밤 11시에 주문한 제품이 그다음 날 아침 7시에 문 앞에 배달되는 시스템에 익숙해 있었다. 일하느라 바빠서 장을 못 봐도, 그다음 날 아침 식량 확보가 가능했다.

미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먹고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니 주말마다 장을 보러 코스트코 등 몇 군데 마트를 돌아다니는 것이 큰 일중 하나이다. 또 한 군데 마트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팔지 않아, 다가오는 주에 굶어 죽지 않으려면 주말에 2-3군데 마트를 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배송 시스템도 가장 빠르다는 옵션이 이틀은 기본이다. 번개배송에 익숙하던 나로서는 이틀 만에 배송되는 것이 자랑할 일인가 싶었지만, 빠른 배송시스템이라고 자랑스럽게 "2 days delivery"라고 오만데다 광고를 한다.

외식은 너무 비싸니 집에서 대부분 다 해 먹을 수밖에 없기도 하다. 외식을 비싸게 만드는 주요 원인은 18%-25%에 달하는 서비스 팁이다. 처음 미국에 도착하여 삼일째 되던 날, 세 식구가 쌀국수 3그릇을 먹고 팁까지 80불을 지불했다. 그나마 외식 치고 싼 편이었는데, 원화로 치면 1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었다. 쌀국수 한그릇 먹자고 10만원을 넘게 지불하다니 외식을 자주 하다가는 기둥뿌리가 뽑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먹고사는 것조차 이렇게 불편할 수가...라고 생각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익숙해져 있었고, 살다 보니 또 적응하게 된 점이다. 집밥스킬이 늘어, 쌀국수도 이제는 집에서 해먹게 되었다.


의료서비스의 수준과 의료보험 시스템은 가장 불편한 점이었다.

국민건강보험으로 아프면 자유롭게 병원을 갈 수 있는 한국과는 딴판이었다. 우선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적인 보험이 없는 미국에선, 사재보험을 들 수밖에 없다. 회사처럼 모집단이 많은 곳에서는 보험료를 할인받는다 하더라도, 개인이 이러한 사재보험을 들면, 한 달에 가장 기본으로 한다해도 거의 1,000 USD가 든다. 그렇다고 아무 병원에나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정된 의사한테 가서 (그것도 예약을 한 달씩 기다려서) 초진을 받아야 큰 병원으로 가는 시스템이다.

보험료가 비싼 건 둘째 치고, 한 마디로 순서 기다리다 아파 죽을 판이다. 길 가다가 도 병원에 들어가 진료를 받을 수 있던 한국이 제일 그리웠던 순간은 나나 가족이 아플 때였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플 때 편히 진료를 못 받으니 더 더 더 서러웠다.


이런 기본적인 불편함 말고도, 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큰 사람들에게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너무나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아무리 캘리포니아가 아시안이 많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는 하나, 한국 사람은 소수 인종일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숫자 측면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한계가 있다. 나는 20여 년의 외국계 직장생활을 통해서, 언어에도 자신 있고, 누구 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곳에서 미국인 친구들 중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결국엔 한국인 커뮤니티가 준거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 자라온 환경과 문화와 언어가 달라, 좋아하는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어릴 적 친구들처럼 사귀기는 한계가 있다.

한국인 자체가 소수이다 보니, 내 준거집단이 소수가 되고, 이 큰 나라에 와 있지만 작은 사회에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느껴진다.

모든 것이 크고 뻥 뚫린 미국에 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다.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는 잠시 머물다 간다고 생각하면 아쉽고 좋은 곳이지만, 본격적으로 생활인이 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좋은 점을 누리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부분이 어떤 점인지,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더 명확해졌다.


이제 장단점은 명확하니, 어떤 곳이 더 나을지는 내 선택의 문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적응해서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한국에서 직접 경험하지 못한 채로 꿈꾸었던 캘리포니아의 삶이, 그 꿈처럼 마냥 빛나거나 항상 찬란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나도 내가 내년 이맘때 어떤 곳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결정을 내려야할 시점이 오면 어느새 그 결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 경험이 많았음을 떠올리면서...오늘 하루도 캘리포니아 생활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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