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금지...라고 누가 그랬어.
나는 토종 한국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학교에서 ABC를 배웠다.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가 중 1 때 처음 배운 영어 회화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중고등학교 영어도 영유나 해외 어학연수의 기회가 많은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다 읽고 쓰며 외워서 시험 보는 수준이었다. 대학교 전공도 영어가 아니었다 보니 전혀 영어와 접할 계기가 없었다.
영어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대학교 2학년 때 교환학생을 지원해 보자는 생각을 하고서였다. 토플 성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컴퓨터로 시험을 보는 걸로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광화문 어딘가에 가서 종이로 토플 시험을 쳤던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 앞 토플학원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두 번 인가 세 번 인가 수업이 있었다. 그때 토플 강의를 했던 선생님은 통번역 대학원을 준비하던, 토종이지만 영어에 관심이 많아 공부했던 분이었다. 수업이 아침 7시부터 있었는데, 한 시간 반 짜리 수업에서 토플 시험문제 풀이는 1시간, 나머지 30분은 리스닝 수업이었다. 그때만 해도 교포출신 토플 강사가 많았고 더 인기가 많았지만, 별생각 없이 학교와 가장 가까운 학원에 수업을 신청해서 만난 강사였다. 결과적으로 토종 학생으로서 토종출신 영어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참 재밌는 과제를 내주었다. CNN 뉴스를 녹음한 테이프를 나눠주고 5분짜리 뉴스를 받아 적게 했다. 연음이 많은 영어 리스닝에는 그게 '직빵'이라는 설명과 함께. 어떤 날은 하이틴로맨스 얇은 소설책을 단어 찾지 말고 읽으라는 얘기도 해주었다. 겨우 겨우 턱걸이로 최저점을 넘은 토플점수를 들이밀어 캐나다의 작은 시골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갈 수 있게 됐다. 교환학생을 가기 직전 방학에는 하이틴로맨스 페이퍼백 영어책을 한 삼십 권쯤 읽었다. 달달한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니 단어를 몰라도 술술 읽혔다. 그때만 해도 내게도 언젠가 이런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까 읽으면서 괜히 설레던 대학생이었다.
물론 교환학생 첫 학기엔 영어로 진행되던 수업이 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수업을 녹음해서 나중에 받아쓰기를 하는 방법으로 해나갔다. 그 선생님이 알려준 두 가지 방법 덕분에 영어는 들리지도 않고 말도 못 했던 내가 캐나다 교환학생 2학기를 F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내게 토종 한국인으로 영어를 언어로 익히는 법을 알려준 강사 선생님은 지금은 미국 콜로라도에 이주하여 가끔 연락해도 서로 반가운 인연으로 남았다.
교환학생 1년 동안 영어에 대한 자신감은 많이 붙었지만, 실제 외국계 기업에서 자료를 읽고 쓰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특히 외국인 (영어밖에 못하는) 상사에게 세상 복잡한 내용을 전달하고 설득해야 할 때는 눈앞이 아득했다. 어릴 때부터 본인의 생각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교육을 받아온 영미권, 유럽권 상사들은, 학교에서 선생님께 질문을 많이 하기보다 오지선다형 시험을 잘 치도록 교육받은 나와는 너무나 달랐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외국계 투자법인에 'Expat'(본사 소속으로 해외법인에 파견되는 직원. 주로 경영진이 대부분이다)으로 파견되는 사람들은 특히나 더 자기주장이 강하고, 비즈니스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쩜 저렇게 말을 조리 있게 잘할까. 어쩜 저렇게 논리적이고도 자신감이 있을까. 를 넘어서 '고집이 더럽게 세네'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강한 캐릭터들이 많다.
도대체 '쓸데없이' 질문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땀이 삐질 삐질 나고 숨이 막힐 만큼 긴장될 때도 있었다. 처음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심장이 정말 쿵쾅쿵쾅 하는 느낌이 실제 손바닥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 많은 질문 중에 "I don't understand"로 대부분 시작되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할 때는 더 심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내용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갔을 법한데, 세상 당연한 것을 왜 그런 거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십 수백 번의 아찔한 순간을 겪은 후 깨닫게 된 것은 이 챌린지는 언어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또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시간이 금인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그리고 대부분 성격이 매우 급한 비즈니스맨에게 내 생각과 의견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정리해서 전달하느냐에 대한 고민의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상대방이 전혀 모르는 내용을 전달하거나, 토론을 해야 할 주제는 내 생각을 마치 '책상 서랍'을 열듯이 하나하나 차근차근 전달해야 이해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머릿속에서 내 말은 얽히고설켜서 요즘 말로 "뭥미?" 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런 책상서랍식 설명에 가장 적합한 언어가 영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는데, 우리나라 말은 동사가 문장 맨 마지막에 오기도 하거니와, 주로 미괄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영어는 주어 뒤에 바로 동사가 딱 나오니 결론이 먼저다. 결론부터 빨리 말하라는 성질 급한 상사의 구미에 영어가 맞네? 하는 생각도 했던 적이 있다.
결론을 앞에 배치하는 두괄식의 결론을 만들고, 미리 스토리 텔링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나니 영어로 하는 보고도 예전처럼 심장이 쿵쾅대진 않았다. 물론 모국어가 아니니 아는 단어를 돌려 막기로 표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지만 오히려 회사 생활에서 쓰는 영어는 더 직설적이고 단순하다는 생각도 든다.
보고할 내용을 정리하고 구조를 만들고 나면 그다음은 외우고 연습하는 단계였다. 일상적인 보고를 할 때는 간단히 적어서 한번 생각을 해보고 보고했다. 어떤 질문을 할 지도 미리 한번 상상해 보았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영어 스크립트를 써서 달달 외우고, 어디서 무엇을 강조할지 인토네이션을 고민하고, 어떤 손짓과 표정을 지을지 생각하고 다시 고치고 연습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뛸지라도, 여유 있는 (척하는) 미소와 자신감 있는 목소리를 유지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참.. 순간순간마다 "밥 벌어먹기 쉽지 않다"라는 생각을 수 없이 했던 듯하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종으로 교포처럼 영어를 솰라솰라 하지도, 발음이 끝내주게 좋지도 못한 내가 외국계 기업에서 임원을 하고 미국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시 또 나오는 '한번 해보지 뭐, 아님 말고'라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글의 제목은 한국에서 초등, 중등 고등학교 1학년을 일반 고등학교에서 마치고 하루아침에 한국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미국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 아들이 카톡 프로필에 올려놓은 한 문장이다: 그래서 영어 언제 잘해짐? 내가 묻고 싶은 바로 그 말이기도 하다.
좌절 금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까지도 매일매일이 좌절이다. 미국에 와서 일을 하면서 더 느끼는 건데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해도 그럴 것 같다. 한국말로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텐데, 영어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답답하지만... "You're not alone" 같은 회사에 다니는 교포인 동료가 내게 해준 말 이 오늘의 유일한 위로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