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미국

미친 거니? 그걸 다 던지고 미국엘 왜가?

by Alex in Irvine

2023년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미국에 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발을 디디던 그날의 공기와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 2023년 6월 15일.

따뜻하고, 건조하고, 낯선 그 냄새.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난 한 외국계 회사의 인사부 임원으로서 전 직원이 참석하는 호텔 콘퍼런스에서 향후 시작되는 회계연도 1년간 HR 정책의 방향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여의도의 한 5성급 호텔에서 케이터링 한 점심을 먹고, 그날 내가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던 매니저인 사장님의 눈물 섞인 배웅을 받으면서 오후 3시에 공항행 택시를 탔다. 미리 공항에 와 있던 남편과 아들과 만나 그 길로 LA 행 비행기를 탔다. 그게 한국에서의 내 23년 반 직장생활의 (일단) 마무리였다. 물론 그 이후도 Remote로 시간당 pay를 받으면서 간간이 일을 했지만, 대학졸업 후 만 23년 4개월 5일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던 내 일을 나는 그날 과감히 아무 계획 없이 그만둬 버렸다.


누가 들어도 동네 마실 가듯 미국을 오다니... 뭔가 부자연스럽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동고동락하던 회사의 팀원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미국으로 왔던 표면적인 이유는 모든 임원의 출국금지 조치를 노리고 있던 노조 위원장의 횡포 때문이었지만(당시 난 노조가 매우 싫어하는 노무에 발이 심각히 걸쳐져 있던 인사부 임원이었다) 솔직한 맘은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오고 싶었다. 큰 결정일수록 500원짜리 껌 한 통 사듯 '가볍게' 액션부터 하고 보는 성격도 있었고, 살면서 무겁게만 생각하면 저지를 수 없는 일이 더 많았기에 그냥 그렇게 했다.


결정과 행동이 가벼웠던 대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은 한없이 무거웠다. 이런 결정을 쉽게 빨리 내리려면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책임감 있게 수습하겠다는 각오와 용기가 필수였다. 그리고 후회가 되더라도 악으로 깡으로 책임을 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힘들고 무거웠던 적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 한없이 가벼웠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더 많이 더 힘들게 노력했다.


한국에서 나는 23년간 외국계 기업에서, 한국 사정에 밝아야 하는 그리고, 외국인 상사들에게 한국의 어쩌면 이해하기 힘든 정서까지 이해시켜야 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인사부 업무든, 대외협력 업무든 한국실정에 어두운 외국인 CEO들과의 얼라인은 쉽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그들의 믿음을 얻는 과정과, 내가 믿는 '정의'와 '올바름', 그리고 '회사를 위한 방향'에 대해 때로는 회사에서 내 목숨줄을 쥐고 있는 그 상사들의 의견과 생각에 반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 모든 용기와 자신감은 한국이 그야말로 나의 '구역'이라는 것에 기초하고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CEO 더라도, 내 홈그라운드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상사에게 너무 자신 있게 "대드는" 내 캐릭터를 구축했고, 오히려 "믿고 맡겨도 되겠다"라는 믿음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어쩌다 떨어진 미국은 그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 와본 미국 서부, 이들의 언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그냥 딱 거기까지였다. 이해하기 힘든 정서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 곳. 낯선 곳. 남의 나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내 주특기인 "구역 자신감"을 발휘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점을 처음부터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관성처럼 자신감은 그대로였기에 많은 좌충우돌과 시행착오는 당연했다. 그 고통스러운 좌절의 끝에 나는 마침내 이곳이 내가 있던 곳이랑 다르다는 그 점을 드디어 인정하고,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아기처럼.


그 과정은 여러 차례 겪어 짐작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더 무겁고 고통스러웠지만, 이 또한 내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미국에 온 지 만 2년이 조금 넘은 지금까지도 나는 그 결정에 책임지고 있고, 아마 쭉 그렇겠지만,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하면서 고통스럽기보다, 책임을 지면서 고통스러운 쪽이 훨씬 낫지 않을까.라고 매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적어도 책임지는 과정에서의 고통은 후회보다는 경험과 배움의 과정을 남기기에 훨씬 유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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