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시간을 허락하라 허락하라!
내 커리어에 있어 두 번째 기회(위기)는 '그믐밤 담을 넘는 도둑'처럼 슬며시 찾아왔다.
3번째 회사이자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에 있을 때 내가 했던 주요 클라이언트 중 하나였던 회사에 입사한 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중이던 어느 날 클라이언트였던 전무님이 팀에 자리가 비었다고 하면서 일해보겠냐고 전화를 주셨다. 당시 '여성 직원이 다니기 좋은 기업'이었던 제약회사로 옮겨 1년 정도 일한 시점이었으나,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다.
출산 휴가를 마치면, 이직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시점에 걸려온 전화가 내심 반가웠다. 에이전트로서 항상 하던 일을 클라이언트 회사에서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출산 휴가를 마치는 대로 그 회사에 입사했다. 세계적인 '담배' 회사였다.
그것도 어딜 가나 욕만 먹던 '양담배' 회사의 대외협력부서.
개인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어도 욕먹는 것이 디폴트였던 시절이었고 대표적으로 욕받이 역할을 하는 부서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니, 솔직히 흥미롭기까지 했다.
들어가자 마자는 늘 해오던 익숙한 커뮤니케이션 일을 했다.
부정적 기사를 항상 쓸 준비가 돼 있는 기자들을 상대하고, 메시지를 만들고,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 와중에 본사에서 한국 마켓에 크게 투자하여, 지방에 제조공장을 확장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좋은 일도 있었다. 그 공장의 기공식과 준공식도 내 손으로 직접 준비했다.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20년이 되어 기념 책자도 발행하고, 사회공헌 활동을 전국적으로 펼치는 회사 덕분에 남해의 섬까지 전국 곳곳에 출장도 잦았다.
천 명 가까이 되는 직원들과 사내 행사도 여러 차례 기획하고 실행했다.
욕도 먹고 칭찬도 들었던 정신없는 몇 년이 지나, 슬슬 욕받이 생활도 익숙해질 무렵, 또 다른 기회가 소리도 없이 슬며시 다가왔다.
담배는 어느 나라나 규제가 굉장히 강한 산업이다. 사양산업이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가장 수익이 많이 나는 제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담배산업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이 만만찮으니, 각국 정부들은 이 세금으로부터 오는 세수와 국민 건강을 지켜야 하는 정부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며, 각종 규제로 이 산업을 '컨트롤' 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러한 규제 대상의 산업을 하고 있는 회사에는 소위 '대관'부서가 매우 잘 갖추어져 있다. 이 회사도 그랬고, 같은 부서에 그런 일을 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이 회사나 다른 회사를 막론하고, 대관부서가 있는 회사의 담당자는 주로 40-50세 사이의 변호사나 기자 출신의 남성들이었다.
'대관'은 말 그대로 '관'을 '상대'하는 업이다. '관'이라 함은 주로 입법부(국회)와 관련 행정기관(기재부, 복지부 등등) 공무원들이다. 이들을 찾아가 회사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주요 업무로, 아무래도 공무원들을 주로 상대하다 보니 남성 중심적인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대관부서에서 일하는 여성직원, 특히 30대는 거의 없었다. 내가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사실 여자 대관담당자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당시 직속상사이자 전무님이었던 대외협력부서장이 대관을 한번 해볼래 하고 물어봤을 때 베일에 쌓여 있는 그 일이 궁금하고 신비롭기는 했다. 아랫 직원을 뽑아줄 테니 홍보업무는 '감독' 하면서 대관은 직접 뛰어보라고 했다. 결정하기 전 잘 아는 사람에게 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일을 잘 아는 친구도 선배도 마땅찮았고, 단 한 명 대기업에서 대관부서에 순환보직으로 1년간 근무해 봤다던 학교 선배는 딱 한마디를 했다. "너네 회사 미쳤구나. 여자한테 대관을 시킨다고?"
그래도 하겠다고는 했다.
비록 내가 잘 모르는 "신비로운" 일을 하던 같은 부서 남성 동료들이 업무 인수인계도 해주지 않았고, 그 일을 해보라고 했던 직속상사마저 정확하게 뭘 하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이 죽일 놈의 "한번 해보지 뭐, 아님 말고"가 또 작동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첫 6개월을 대차게 헤맸다. 우선 닥치는 대로 담당 공무원이 요청하는 자료를 만들어 주고, 협회 미팅에도 참석했다. 다른 대관담당자들은 국회에 계속 가던데, 가서 종일 있던데 뭘 하는 건지 도당최 알 수가 없었다. 물어봐도 가르쳐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건 직속상사도 마찬가지였다.
새로 일을 옮기고 어리 버리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직속 상사는 성과 평가를 하면서 내게 일갈했다. "도대체 한 게 뭐냐?"라고...
그간 했던 것을 나열했더니, 그렇게 해서 나온 성과가 뭐냐는 질문이 다시 날아왔다. 생각해 보니 딱히 눈이 보이는 성과가 없던 건 맞았다. '언제 한번 가르쳐준 적이나 있나'라고 속으로 욕(!)하면서 방을 나왔다.
몰랐던 사실이지만 같은 일을 하던 부서 동료들도 알고 보니, 조력자가 아니라 경쟁자였다. 매니저가 업무를 명확히 나눠주지 않은 채로 '한번 해봐라' 식이니, 홍보업무를 할 때는 겹치지 않던 업무가 겹치게 되고, 동료들도 별로 도와주고픈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말도 안 되게 30대 여성 대관 담당자라니.. 어디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라는 생각도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여러모로 '개인주의'가 심했던 직속상사도, 살갑게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본인도 실무를 잘 몰랐을지도.
어찌 됐건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를 들으니 자존심이 상했다. 위기였다. 괜히 대관을 한다고 했나 싶게 후회도 되고, 동시에 오기도 생겼다. 대체 저들은 일을 어떻게 하길래 '한 게 없다'는 소리를 안 듣고 회사를 잘 다닐까...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다음 과정은 이다음 편에 자세히 쓸까 한다.
또 다른 맨땅에 헤딩 스토리라 '피를 철철 흘리고, 상처가 아물어 딱지가 앉기를 여러 번 했던' 얘기라 맘의 준비가 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대차게 헤맨 첫 6개월은 그 후에도 쭉 계속했던 대관 담당자로서의 성과를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첫 6개월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그 이후의 내 커리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헤매는 시간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어떤 일을 하든 헤매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회사원이었으니 6개월로 끝난 것이지, 자영업자나 다른 종류의 일이라면 더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경험으로, 나중에 팀원들과 같이 일을 할 때도 새 업무를 부여한 지 첫 6개월은 "헤맬 수 있는" 시간으로 두게 되었다. 회사는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주는 조직이 아니라, 직원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일을 특히 서두르는 경향이 강한데 나라도 시간을 좀 주고 싶었다.
그 시간을 '필요했던' 시간으로 남기느냐, '쓸데없는 시간낭비'로 남기느냐는 어떻게 활용했느냐에 달렸고, 그 시간을 필요했던 시간으로 남기는 태도를 갖춘 직원이라면 '헤매는 시간'을 부여받는 것이 공정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