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오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대관업무에 익숙해지고 보이기 힘들었던 성과가 보였던 것은 업무 시작 후 3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규제 때문에 무조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회사 신제품 론칭과 제품의 특장점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관계자들을 3년여간 설득한 끝에) 할 수 있게 됐고, 결과적으로 제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신제품은 회사의 사활을 걸었던 제품이라,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출시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마케팅/영업을 하지 못했을 테니, 이런 곳에서 바로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르던) 대관부서의 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대관 업무 3년여 만에 제품 관련 이슈에는 빠삭이가 되어 있었고, 내가 만나는 관계자들에게 긴요했지만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자료의 공급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던 처음과 달리 나는 찾아가면 최소한 문전박대는 받지 않는, 어떤 곳에서는 꽤 환영받는 대관 담당자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한 가지 방법을 누가 뭐래도 꾸준히 했던 것이 주효했다. 어렵게 만난 분들이 다음에 나를 다시 찾을 이유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들이 못 구하는 자료와 정보를 외국계의 장점을 살려 찾아 공급해 주는 것이었다.
업계의 최신 동향이나, 국제 보건기구의 관련 입장자료부터, 본사에 부탁하여 구한 연구자료까지 잘 번역하고 보기 좋도록 정리하여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요청하든 요청하지 않든 정기적으로 했다.
이 과정이 반복되자 필요할 때 나를 제일 먼저 찾는 '갑'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업계의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고, 상대방이 필요한 내용을 적절한 타이밍에(아니, 꾸준히) 제공하는 일. 그들의 신뢰를 얻고 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잘 녹여 공격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전달하고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적절한 전략과 전술, 사람 간의 신뢰까지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스릴이 넘쳤지만 재미있었고, 온 힘을 쏟아부은 일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까지 나기 시작하니 신이 났다. 그렇게 꽉 채운 4년 여가 지났을 무렵 변화의 계기는 나 자신보다 밖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한 게 뭐냐?"라고 하던 매니저와 동일 인물인 대관담당부서 전무님은 성과 평가에서 좋은 점수는 주면서도, 진급에는 왠지 모르게 인색했다. 급여가 두 자릿수로 오르고, 성과급도 많이 받았는데, 승진은 시켜주지 않았다.
내 입으로 진급은 어떻게 됐냐는 말이 차마 안 떨어지던 나 조차도, 성과평가를 위해 잡힌 미팅에서 "저 이제 좀 올려 주실 때도 된 것 같습니다. 혹시 진급이 되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유를 찾다 찾다, 혹시 내가 여자라서?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던 진급이 안 됐던 이유를 한참 후에 인사부 임원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됐다. 진급을 하려면 직속상사의 '의지'와 '능력'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한데, 당시 내 상사였던 그분은 의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외국계 회사는 보통 승진 심사를 할 때 360도 인사평가(다면평가라고도 한다. 소속 부서의 직속상사나 부서장 말고도 다른 부서의 부서와 인사부서에서도 진급 심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를 하게 되는데, 직속상사가 다른 부서의 장들을 설득할 '능력'이 안되면 그 상사의 부하직원들의 승진은 리스트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당시에는 이러한 사정을 전혀 몰랐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모티베이션(동기)이 많이 떨어졌고, 더 이상 열심히 일을 하기 싫어졌다.
사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이미 일은 익숙했고, 예전에 하던 노력의 절반 정도만 해도 그냥저냥 괜찮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안에 무언가가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불꽃인지 작은 불티인지 모르겠는 그 무언가가 내 맘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는데, 이 것을 터트리지 못하니 답답했다.
그날로 이직을 결심하고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미 상당한 급여와 근무조건으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명 '더 좋은 자리'로의 이직 기회가 빨리 오지는 않았다.
조급하여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직을 하던 안 하던 이 일과 이 시간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라는 것이었다.
내 것인 이 시간을, 또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간이 될지 기약이 없는 이직 준비 기간 동안 두 가지를 하기로 했다.
좋아하던 운동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볼 것. 그리고 평소에 못했던 네트워크를 넓혀볼 것.
좋아는 했으나,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고 제쳐 놓았던 골프 연습에 매진했다.
새벽에 레슨을 받고, 퇴근 후 매일 퇴근길에 초록색 그물이 쳐진 연습장에서 150개씩 연습공을 쳤다. 워킹맘으로 사정이 어렵긴 했지만(시어머니의 눈치도 보이고) 그래도 주말에 가능할 때 라운딩도 가보려고 노력했다. 아주 나중에 깨달았지만, 이때 들인 노력과 시간은 여러모로 꽤 유용하게 쓰였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던 곳에서 '노는' 시간을 더 공들여서 가졌다.
같은 일을 해도 절반의 시간만 들이면 됐었는데, 나머지 절반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알아가는데 썼다. 물론 재직 중인 회사의 타이틀로 만나는 것이니 회사를 위한 일이 되기도 했지만, 나는 그 모든 노력이 우선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관업무를 하면서 알게 되었던 정치권에 있던 친구들은 사기업으로 옮겨보고 싶어 하기도 했는데, 그런 친구들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큰 기쁨이었다. 사기업의 생리를 잘 모르던 친구나 선배들에게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인터뷰 시뮬레이션을 같이 연습하기도 했다. 나를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참 보람되고 기뻤다.
그렇게 1년 여를 보낸 후, 드디어 이직의 기회가 왔다.
가는 회사의 계약서에 사인을 한 날, 본사에 출장을 가 있던 직속 상사에게 이메일로 사직의사를 밝혔다. 단 한 줄이었다.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합니다. 한 달 후인 0월 0일까지 근무하고자 합니다"
유럽시간으로 새벽이 되자마자 득달같이 전화가 걸려왔다.
"왜? 거기 가면 잘해 준대?"가 일성이었다. 왜 이직하는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대답은 "아닙니다. 급여가 많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대관 업무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업무로 스콥도 한정됩니다. 다만, 제가 이 회사보다 그곳에서 더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에 이직하기로 했습니다"
직속 상사는 사표 제출 후의 국제전화 통화로도, 출장에서 돌아와서도, "다음 분기에는 꼭 진급을 추진해 보겠다" 며 말렸지만 이미 다음 회사의 출근 날짜가 정해진 시점에 되돌릴 수는 없었다.
1년을 준비한 사표를 내는 게 장난도 아닐뿐더러 되돌릴 만큼 가벼운 결정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잘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낸 것으로 보였을지언정..
상사에게 했던 말 그대로였다. 연봉도 비슷했고, 일도 대관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일이었다.
다만 인터뷰 과정 도중 이 회사가 내가 알고 있는 대관 업무에 대한 니즈가 있으나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간은 걸리겠으나, 업무 확장이 가능하고 대관업무의 '사관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업무로 적용해서 개척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직의 이유는 그것이었다.
내 전체 커리어상 도움이 될 이직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이 예스였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소위 말하는 '더 좋은 자리'가 아니었지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 됐다.
그 이직 결정으로 나는 세 번째 '2보 전진' 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