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답이다

내 일을 사랑하는 이유

by Alex in Irvine

나는 왜 일을 하는 걸까? 2000년 1월부터 일을 했으니, 꼬박 25년간 프로 월급쟁이로 일을 했다.

미국에서 다시 회사원이 되기 전까지 중간에 파트타임으로 1년여간 일한 것 빼고는 모두 풀타임 회사원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Yes

자아실현을 위해서? Yes

사회생활을 위해서? Yes


일을 하는 이유는 이렇게도 많지만, 나의 경우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같이 이뤄나가는 일이 즐겁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내가 사람들과 같이 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 와서 풀타임 일을 잠시 놓았을 때였다.


사표를 던지고 미국에 와서 1년 정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프로 주부가 되었다. 아침마다 출근 준비를 하는 대신 가족들을 위한 아침을 차리고(새벽 5시 30분 기상시간은 회사원이나 주부나 같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서는 집안일을 하고, 운동을 했다.

시간 맞춰 아이를 픽업하고, 간식과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의 퇴근 시간을 확인하고 저녁을 차렸다.


인사와 노무, 대관을 같이 맡아하던 임원자리는 종일 사람에 시달리는 자리인지라, 몸보다는 맘이 많이 지쳐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 와서 남편을 직장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창밖을 내다보며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고요함이 참 좋았다. 어쩌면 몸은 회사원일 때보다 더 바빴지만 더 이상 사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그 고요함이 맘에 들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자 사람이, 아니 사람들과의 소통이 그리웠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기도 하고, 한국 친구들에게 연락하기도 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밟아 본 캘리포니아 땅에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다행히 미국에 온 지 한 달쯤 됐을 때 학교 선배 한 분을 알게 되면서 소개를 받아 골프장에 나가게 됐다. 같이 골프를 친 이곳 분들 중에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고, 그때부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그중에 운이 좋게도 맘이 통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나는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희한하게도 시간이 지나자 일하면서 사람에 시달렸던 기억은 모두 희미해지고, 고마웠던 기억, 좋았던 인연만 기억에 남았다.


미국에 와서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의 삶이 점점 더 궁금하고 신기해졌다.

미국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한국인(멕시칸, 이탤리언 등등)으로서 미국에 사는 삶은 어떤지, 어떤 일을 했었고, 어떤 선택을 했으며 그 선택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새로운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고, 소통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오래된 인연과 다시 링크드인에서 연락이 닿고, 소식이 끊어졌다가 미국에 와서 다시 만나게 된 인연들과의 조우도 반갑고 좋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나의 전문 분야인 맨땅에 헤딩하는 과정), 이곳에서 다시 회사원이 된 것도 사람들과 함께 이루어나가는 보람과 기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였다. 비록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 적잖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한창 일을 찾을 때의 마음은 그랬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에게 상처받거나 지쳤을 때, 내가 다시 힘을 얻는 대상도 사람이었다.

인사부서에서 일을 하다 보면 별별 사건에 대해 다 알게 되고 때로는 모르고 싶은 일에도 뛰어들어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이런저런 사건들에 지치고 힘들어 '지긋지긋하다'라는 기분이 들 때 다시 일어날 힘을 주는 사람들이 짜잔 하고 나타났다.


일을 할 때나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날 때 항상 authentic(거짓 없이 스스로의 모습에 솔직한)하게 다가갔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맘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나를 믿고 내게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조언을 구하고 마음을 나눠주었다.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운 순간과 인연이 많다.


살아갈수록 아주 예전 어느 대기업 광고 카피로 등장했던 "사람이 답이다"라는 말은 새록새록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트워킹을 활발히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인생 모든 순간의 '답'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인사의 '이응'자도 몰랐던 내게 인사부 임원의 자리를 턱 하니 맡긴 그 당시 사장님은 아마도 인사의 핵심은 '사람'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고, 아마도 나 자신도 모르던 그런 모습을 내게서 찾아내준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업으로 삼는 일을 좋아할 수 있다면 참으로 행운일 텐데, 그런 점에서 난 참 운이 좋다.

한국에서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았으니 말이다.

미국에 와서 맨땅에 헤딩한 잡서치 스토리는 다음에...

작가의 이전글기회는 운, 살리는 건 노력 II-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