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는데.. 나 좀 내버려 둬
직장생활을 할수록, 나이가 먹을수록 인간은 같은 종인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는 그 영향력이 좋은 영향력인 경우보다, 나쁜 영향력이 경우가 더 많았다.
아니, 선한 영향력은 잘 티가 안나도 해가 되는 영향력은 너무나 티가 많이 나서 눈에 뜨이는 것일 수도 있다.
나쁜 영향력을 미치기로 맘먹는 경우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우리 조상님들이 이미 기가 막히게 잘 아시고 속담까지 만들어 놓으신 말처럼 시기와 질투, 시샘이 들어있는 경우도 꽤 있다. 나보다 잘 났거나, 너무 자신 있어 보이거나, 다 가진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인간이면 누구나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라는 심보가 생기나 보다.
일명 "노처녀"들이 득시글거렸던 첫 직장에서, 나의 '노처녀' 사수는 내 신혼여행 기간이 2주인 것에 대해 "보도자료가 나가야 된다"는 이유로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 2주는 '절대' 안되고 1주일만 휴가를 쓰고 출근을 해야 한다고 우겼다. 보도자료를 꼭 내가 내보내지 않으면 하늘이 두 쪽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심술을 부리는지 이해가 안 갔다.
한참 만에 깨달은 사실인데, 본인이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난 그녀의 눈에서 그녀가 아직 갖지 못한 남편을 갖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시기와 시샘의 눈빛을 읽었다. 직속상사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희미했던 조그만 에이전시 사무실이었지만 그녀는 본인이 가진 너무나 '깃털 같은' 권력을 이용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그럴듯하나 구차한 핑계로 내 신혼여행에 스크래치를 내고자 했다.
재미있게도, 그녀의 이런 시샘과 시기는 자신이 몇 년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완전히 없어졌다.
언젠가는 같은 팀 여자 사원의 음해에 시달렸던 적이 있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내 직속상사의 방으로 들어가서 이른 것이다. 내가 "너무 세서" 같이 일하기 힘들다고 일렀다고 한다.
왜 캐릭터가 '센' 것이 일하기에 어려운 지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 대답을 피했다고...
그 이후로 수년 동안 나는 크고 작은 시샘과 질투와 시기를 경험했다. 친구 사이에도, 직장 선배 사이에도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주로 여성들로부터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남자들하고 일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모습이 여성들한테는 보였다.
심지어 하다 하다 법적으로 맺어지기는 했지만 '가족'으로부터도 시샘을 당한 적이 있다.
내가 내고 있는 4대 보험의 금액을 조회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내 가족이(여자다. sister in law로 영어로 번역되는) 내 연봉을 나 모르게 조회해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엔 기분이 몹시 나빴는데, 시간이 지나자 대체 이 심리는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정말 '여자의 적은 여자' 인가? 세상 유명한 '고부 갈등'도, '동서지간의 갈등'도 여자 대 여자다.
직장생활을 해도 여자들끼리의 갈등이 생길 때마다 곧바로 따라오는 말은 "이러니 여자들하고 같이 일하기 힘들다"였다.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왜 대체 여자들끼리 그렇게 물고 뜯고 하는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일 답답했던 것은 그 와중에 나는 왜 100% 물리고 뜯기는 대상인지, 내가 물고 뜯은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뭔가 맘에 안 드는 점이 있으니 훼방을 놓고 험담을 하고, 몰래 내 뒷조사를 하지 않겠는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것이 없는데도 나에 대해 맘에 안 드는 점은 무엇이었을까.
장고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내 문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문제라는 점이다.
직접적으로 나로부터 입은 피해가 없다는 건 내가 그들에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그 문제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일 터였다.
첫 직장 노처녀 상사는 본인이 뭐가 못나서 아랫 사람인 나도 하는 결혼을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내 직장생활에 해를 끼치고자 했던 같은 부서 직원은 내게 보이는 자신감과 투명한 화법이 맘에 안 들었던 것 같다. 그녀 자신은 항상 조용하고, 일에서도 실수가 많았는데 같은 실수를 해도 투명하게 말하고, 수습책을 찾는데 집중하는 내가 맘에 안 들었던 것 같다. 그녀의 실수처리 방식은 나와는 달랐다. 처음에는 최대한 감추다가, 상사에게 발각되면 자책과 거듭된 사과를 하면서 점점 더 쪼그라들었다.
같은 '여자'인데 일처리 방식이 다른 내게 짜증 나고 시샘 나고 그냥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방법으로 그녀는 내가 한 말을 최대한 왜곡해서 수첩에 하나하나 적어 놓은 다음, 그걸 내 상사에게 일러바치는 방법을 택했다.
Sister in law 인 그녀는 왜 내 연봉을 찾아봤을지 생각해 봤는데, 늘 회사를 잘 옮겨 다니고, 힘든 일도 없어 보이고, 늘 웃고 있는 나를 보니 궁금했던 것 같다. 아마도 "항상 저렇게 잘 사는 것 같은데 연봉은 얼마나 받는지 한번 볼까" 하는 맘? 본인도 별 나이차이도 안 나고, 같이 애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하던 차였으니 호기심이 작동했을 수도 있고.
내가 겪은 이 세 분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보다 남들에게 훨씬 더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의 삶, 일과 직장, 취미, 인간관계, 가치에 관심을 쏟고 열심히 하고 집중하기보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를 늘 신경 쓴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해 본 적이 없었다. 인간이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당연히 주위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기는 한다.
그렇지만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저 사람의 인생은 또 그 나름대로의 인생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 뿐, 누가 누구보다 더 낫고 더 못하다는 생각도 진심 전혀 해 본 적이 없다.
친구나 친척이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했고 부러워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내가 갖지 못해 배가 아프고 그 일을 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일을 할 때도 내게 일이 주어지면 그 일에 집중했을 뿐,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도 않았다.
내 일하기도 바쁘고, 내 삶을 살아내기에도 벅찼다.
문제는 남들이 다 나 같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여성이라는 성별로 타고난 것 때문에 같은 여성들의 비교대상이나 타깃이 더 많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시샘하는 맘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성정이고, 굳이 왜 저러나 의문을 갖거나 영향받을 필요 없이 '응, 저 사람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그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본인의 삶을 들여다볼 시간도 모자라는 인생에 남의 삶까지 보고 비교하고, 내심 망치고 싶어 하는 그 맘은 또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촌이 땅사면 배 아픈 그 심정을 백 프로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 와서 하나 좋은 점은 사람들로부터 "Out of 안중"이 된 것이다. 물론 이곳도 시기와 질투는 있겠지만,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와 각자 너무 다른 인종, 삶의 방식 덕분에 이러한 관계에서 오는 피로도는 아직까지는 훨씬 약하다고 느낀다.
Please leave me alone (날 좀 내버려 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