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로 인한 폭식증 극복기
언제부터인가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속상한 날엔 폭식을 했다.
원인은 분명하다. 멋모르고 어린 시절 떠난 미국에서의 교환학생 때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받은 뒤로는 복잡한 마음과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음식을 섭취했다. 음식을 먹는 그 순간만큼은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현실에 대한 자각이 둔해진다. 그 순간은 잠시 내가 처한 상황보다 그 음식이 주는 만족감만이 나를 채운다. 그래서 나는 속상하거나 슬픈 날엔 닥치는 대로 손에 집히는 모든 음식을 먹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다 삼켰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그냥 입안에 무언가를 넣고, 씹고, 삼키면 그 시간 동안은 안정감이 들었다. 그 시절 나는 뇌의 랩틴(식욕을 억제하고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키는 역할의 호르몬)의 부재로 인해 6개월 만에 24킬로가 찐 채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인간관계에 대한 트라우마와 폭식 습관은 덤으로 말이다.
오랜만에 만나 몸뚱이가 커진 나를 보며 사람들은 놀란 마음을 감추며 장난스러운 말을 던졌다
"미국에 뭐가 그리 맛있었어?"
글쎄, 지금 돌아보면 크게 개이치 않고 넘길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내겐 너무 가혹한 말이었다. 그런 말들은 내겐 폭식이라는 쳇바퀴 속 멈출 수 없는 연료가 되는 말이었다. 사람에게 상처받아 음식으로 위로받고,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음식에게 위안을 찾는 내가 되었다.
거울 속에 나는 혐오스러움 그 자체였다.
한 번도 이 정도의 뚱뚱한 내 모습을 보지 못했던 내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어버린 몸을 받아들이긴 너무 힘들었다(게다가 진짜 맛있는 거 먹으며 행복하게 찐 살도 아니니, 정말 지는 장사였다). 그래도 다행히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로 폭식을 하는 것처럼, 반대로 사람이 주는 사랑으로 인해서 폭식이 줄어가는 영향도 있었다.
그렇게 난, 고등학교 졸업까지 트라우마로 인한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으로 간간히 폭식을 해왔다.
성인이 된 이후론 마음이 조금 단단해진 걸까, 혹은 나를 더 사랑해 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여서일까, 폭식이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가끔 의도한 바와 다르게 누군가와 엇나가거나, 누군가 상처 주는 말을 했거나, 연애가 잘 안 풀리거나, 거울에서 본 내 모습이 실망스러워 울적하면 음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했다. 그렇게 내 새로운 몸에 적응하고 받아들이는데만 장장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무던히도 내게 맞는 옷, 라이프 스타일, 가치관, 신체상, 삶의 태도, 인간관계, 자기애 등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무엇보다 나는 어떤 모습, 상태이어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되뇌었다. 그렇게 내 폭식은 잦아들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단한 울타리를 새웠다. 그 울타리 안에 내게 긍정을 주는 사람들로 채워나갔고 내 마음은 점차 평화로 채워나갔다. 나는 더 이상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을 음식으로 채울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아직 아주 가끔은 사람으로 힘들고 속상한 날엔 맛있는 거를 먹고 잊고 싶다.
한 번은 직장동료에게 행복은 무엇이냐 물었다.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돌아온 대답은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거 먹는 거요.
그래.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걸 먹으며 행복하면 폭식도 없겠다. 그렇게 지금 어딘가 지금까지의 나처럼 속상한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