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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월 Feb 19. 2023

속상한 마음을 먹어본 적 있나요?

트라우마로 인한 폭식증 극복기

언제부터인가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속상한 날엔 폭식을 했다.


원인은 분명하다. 멋모르고 어린 시절 떠난 미국에서의 교환학생 때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받은 뒤로는 복잡한 마음과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음식을 섭취했다. 음식을 먹는 그 순간만큼은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현실에 대한 자각이 둔해진다. 그 순간은 잠시 내가 처한 상황보다 그 음식이 주는 만족감만이 나를 채운다. 그래서 나는 속상하거나 슬픈 날엔 닥치는 대로 손에 집히는 모든 음식을 먹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다 삼켰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그냥 입안에 무언가를 넣고, 씹고, 삼키면 그 시간 동안은 안정감이 들었다. 그 시절 나는 뇌의 랩틴(식욕을 억제하고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키는 역할의 호르몬)의 부재로 인해 6개월 만에 24킬로가 찐 채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인간관계에 대한 트라우마와 폭식 습관은 덤으로 말이다.


험난한 미국 생활기에 큰 힘이 되어준 친구 가족. 이건 미국의 6인 (+나) 가족의 일주일치 장보기 클래스다.


오랜만에 만나 몸뚱이가 커진 나를 보며 사람들은 놀란 마음을 감추며 장난스러운 말을 던졌다

"미국에 뭐가 그리 맛있었어?"


글쎄, 지금 돌아보면 크게 개이치 않고 넘길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내겐 너무 가혹한 말이었다. 그런 말들은 내겐 폭식이라는 쳇바퀴 속 멈출 수 없는 연료가 되는 말이었다. 사람에게 상처받아 음식으로 위로받고,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음식에게 위안을 찾는 내가 되었다.


거울 속에 나는 혐오스러움 그 자체였다.


한 번도 이 정도의 뚱뚱한 내 모습을 보지 못했던 내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어버린 몸을 받아들이긴 너무 힘들었다(게다가 진짜 맛있는 거 먹으며 행복하게 찐 살도 아니니, 정말 지는 장사였다). 그래도 다행히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로 폭식을 하는 것처럼, 반대로 사람이 주는 사랑으로 인해서 폭식이 줄어가는 영향도 있었다.


그렇게 난, 고등학교 졸업까지 트라우마로 인한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으로 간간히 폭식을 해왔다.


성인이 된 이후론 마음이 조금 단단해진 걸까, 혹은 나를 더 사랑해 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여서일까, 폭식이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가끔 의도한 바와 다르게 누군가와 엇나가거나, 누군가 상처 주는 말을 했거나, 연애가 잘 안 풀리거나, 거울에서 본 내 모습이 실망스러워 울적하면 음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했다. 그렇게 내 새로운 몸에 적응하고 받아들이는데만 장장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무던히도 내게 맞는 옷, 라이프 스타일, 가치관, 신체상, 삶의 태도, 인간관계, 자기애 등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무엇보다 나는 어떤 모습, 상태이어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되뇌었다. 그렇게 내 폭식은 잦아들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단한 울타리를 새웠다. 그 울타리 안에 내게 긍정을 주는 사람들로 채워나갔고 내 마음은 점차 평화로 채워나갔다. 나는 더 이상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을 음식으로 채울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아직 아주 가끔은 사람으로 힘들고 속상한 날엔 맛있는 거를 먹고 잊고 싶다.


한 번은 직장동료에게 행복은 무엇이냐 물었다.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돌아온 대답은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거 먹는 거요.

그래.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걸 먹으며 행복하면 폭식도 없겠다. 그렇게 지금 어딘가 지금까지의 나처럼 속상한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꼭 맛있는 걸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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