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프로젝트: 순수함의 재고

The Florida Project: 2018

by 신아월

2025년, 기후 위기로 인해 서울은 온통 찜통 같은 습기와 열기로 가득했다. 그 뜨거움은 저녁 무렵 이마 위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로 변했고, 그런 날 옥상에서 열린 별빛 영화제에서는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상영되었다.


문득 2017년, 오하이오주에서 플로리다까지 1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6인 가족과 함께했던 로드트립이 떠올랐다. 플로리다의 바다는 백사장 외에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어쩌면 수상할 만큼 평범했던 장소였다. 그러나 그 바다를 특별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바다를 대하는 태도였다.


플로리다의 열기를 닮은 서울의 여름,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영화 자체보다 그것을 함께 보는 이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사담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중간에 잠깐 졸긴 했지만,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통해 느낀 '개인적인 순수함'에 대한 짧은 고찰을 남겨본다.


1. 매직캐슬 : 씁쓸한 마법의 성


플로리다주 올랜도. 디즈니랜드로 유명한 이곳의 외곽에서 여섯 살 소녀 무니는 싱글맘 핼리와 함께 '매직 캐슬'이라는 원룸 모텔에 살고 있다. 매직 캐슬은 보라색 페인트로 뒤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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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의 보편적인 상징성은 "고귀함, 외로움, 그림자, 권력, 지배력, 중성"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매직 캐슬은 보라색으로 뒤덮여 어떤 의미를 상징하고 있을까. 겉으로는 어린이의 동심을 자극하는 장난감 같은 색이지만, 그 안의 일상은 동화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거칠다.


무니와 핼리는 모텔의 주급 방세를 감당하기 위해 향수나 물건을 팔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 속에서도 무니는 이 보잘것없는 공간을 자신만의 ‘마법의 성’으로 만든다. 침대 하나 놓인 작은 원룸에서도 무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친구들과 상상의 세계를 펼치며 하루하루를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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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먹는 피자 한 조각에도 무니는 신이 난다. 페퍼로니가 빠진 피자를 보며 핼리는 “페퍼로니도 돈이야”라고 말하지만, 무니는 그런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피자를 먹는다.


가난을 현실로 살아가는 핼리와, 그 속에서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지 않는 무니. 그 간극 속에서 매직 캐슬은 무니에게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소속감을 주는 ‘보라색 보호막’이자 동심을 지켜주는 공간이 된다.


외로움과 그림자가 드리우는 공간일지라도, 보라색이라는 색이 지닌 고귀함과 부의 상징성이 이 아이에게만큼은 ‘마법’처럼 작용한다. 그것은 바로 매직 캐슬이 무니에게 진짜 ‘마법의 성’이기 때문이다.


2. 나무, 무지개, 핼리콥터: 부와 동심의 사이

영화를 찬찬히 보다 보면 유독 기억에 남는 세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쓰러진 나무, 둘은 CG처럼 선명한 무지개,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헬리콥터다.


이들은 각기 다른 미장센을 통해 등장하지만, 결국 귀결되는 지점은 하나다. 바로 ‘현실 속에서 지켜지는 동심’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하나, 나무.

어느 날, 무니는 젠시와 함께 놀다가 쓰러진 나무 위에 앉아 친구에게 묻는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제일 좋아하는지 알아?
쓰러졌는데도 자라기 때문이야.”


이 말은 어쩌면 무니 자신의 삶을 은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조차 누리지 못하는 무니. 여느 평범한 6살이라면 당연하게 여길 것들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녀에게 삶은 이미 한 번 쓰러진 나무와 같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나는 자신을 닮았기에, 이 쓰러진 나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둘, 무지개.

무니와 젠시는 무지개 끝에는 금은보화가 있다고 믿는다. 무니는 레프러콘이 거기 있을 거라고 말한다.

레프러콘(Leprechaun)은 아일랜드 신화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로, 요정의 일종이자 무지개 끝에 숨겨진 금항아리를 지닌 구두 수선공으로 묘사된다.


아이들은 이 전설을 아무 의심 없이 믿으며, 금은보화와 요정을 동심의 언어로 꿈꾼다. 그리고 그 동심은 가난이라는 현실을 희미하게 가린다. 매직 캐슬 위에 펼쳐진 무지개 아래, 무니는 현실과 환상이 엇갈리는 순간 속에서도 순수한 상상을 멈추지 않는다.

이 장면은 놀랍게도 메이킹 필름을 통해 밝혀진 즉흥 연출이었다. 저예산 영화였기에 무지개가 유난히 아름답게 뜬 날, 감독은 아이 배우들을 데리고 즉석에서 촬영을 시도했다. “레인보우 송 불러봐”, “무지개 끝엔 뭐가 있을까?” 같은 질문에 무니와 젠시는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애드리브로 장면을 완성했다. 이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얼마나 현실과 닿아 있는 영화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셋, 헬리콥터.

영화 전반에 걸쳐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헬리콥터는 디즈니월드로 가장 빠르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부유층의 교통수단이다.


매직 캐슬과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머리 위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날아가지만, 이들은 그 존재에 무심하다. 마치 그 소리가 일상이 된 듯,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는 빈부 격차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더 인상적인 점은 단 한 번도 무니와 친구들이 그 '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감독의 코멘터리에 따르면, 헬리콥터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던 것이었다. 교통을 통제할 예산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실제로 날아다니는 헬리콥터를 촬영에 그대로 활용했고, 이 설정을 극본에 편입시켰다고 한다.


그 사실만으로도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얼마나 철저히 ‘현실’을 살아낸 영화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상상과 동심, 공상이 깃든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거칠고 불편한 현실이 겹겹이 놓여 있다.


3. 핼리: 딸에게만큼은 최고의 친구이자 다정한 엄마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핼리는 번듯한 직장을 구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거짓말은 밥 먹듯 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곤 한다. 그런 그녀에게도 유일하게 화를 내지 않고, 거친 욕설조차 섞지 않는 존재가 있다.


바로 딸, 무니다.


근근이 벌어온 생활비는 결국 성매매로까지 이어지지만, 핼리는 자신을 꾸미거나 사치를 부리기보다 번 돈을 주로 방세, 아이스크림, 그리고 무니를 설레게 할 쇼핑에 쓴다. 마음처럼 안 되는 날이면, 호텔 투숙객인 척 323호를 말하며 뷔페에 몰래 들어가기도 한다.

핼리의 생존 방식은 ‘거짓말’이다. 남을 속여 돈을 벌고, 아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무니 앞에서는 그 거짓이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로 바뀐다.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리게 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방식인 셈이다.


가끔은 무니보다 덜 자라 보이기도 하고, 때론 무니와 똑같은 6살처럼 보일 만큼 철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핼리의 행동 중심에는 늘 ‘모성애’와 ‘보호 본능’이 있다.


늘 짧은 반바지에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민트색 백팩을 메고, 무니가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 핼리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한다.


매직 캐슬에서 핼리의 성매매 사실이 퍼졌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엄마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질타한다. 하지만 핼리에게도 그 선택은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녀는 무니가 좋아하는 목욕 시간에 라디오 힙합 채널을 최대 볼륨으로 틀어 놓고,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딸을 지켜내려 한다. 낯선 이가 그 경계선을 넘었을 땐 핼리만의 방식으로 분노하고, 복수한다.


핼리의 양육 방식과 환경은 겉으로 보기엔 아동복지기관이 개입할 정도로 ‘최악’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6살 무니는 누구보다도 당차고, 순수하며, 친구를 아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이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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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순수함이란, 과연 사회가 정해놓은 시선과 방식으로 지켜질 수 있는 것일까?
돈과 안전, 그리고 디즈니랜드에 데려다줄 수 있는 번듯한 부모가 있어야만 아이들의 환상이 보호받는 것일까?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순수함’과 그를 둘러싼 환경, 그리고 진정한 양육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형식과 조건을 갖춰야만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해내는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그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아이의 동심을 믿어주는 태도야말로, 순수함을 지켜내는 진짜 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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