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미치광이풀
야생화에는 재미있는 이름이 많다. 옛 조상들의 해학을 들꽃에서까지 확인하는 듯해 그런 꽃을 만날 때마다 이름을 떠올리며 싱긋거리고 만다. 열매가 개 거시기를 닮았다고 개불알풀, 꽃이 그렇다고 개불알꽃이 있는가 하면 광릉요강꽃도 있고 송장풀, 쥐오줌풀, 요강나물도 있다.
안경같이 생긴 꼬투리 끝에 낚시바늘 같은 갈고리가 있어 옷에 잘 달라붙는다며 도둑놈의갈고리라는 꽃이 있는데 이 꽃의 가족 이름이 큰도둑놈의갈고리, 개도둑놈의갈고리 식으로 나간다. 아주 작아 눈에도 잘 띄지 않는 꽃인 털이슬 종류는 개털이슬, 쥐털이슬, 말털이슬, 소털이슬 등이 가족이다.
큰개불알풀은 이름이 흉하다고 봄까치꽃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반대다. 우선 정식 추천명을 멋대로 바꿔부르면 소통에도 문제가 되지만 세상엔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중요한 건 아니지 않는가. 내가 보기엔 큰개불알풀이 더 직관적이고 기억하기도 좋다. 이름을 바꿔야 한다면 여성 혐오를 드러내는 며느리밑씻개, 기생꽃 등이 먼저여야 할 것이다. 개불알꽃은 오래 전 복주머니란으로 추천명이 바뀌었다.
미치광이풀도 특이한 이름 중의 하나다. 꽃은 다소곳하고 예쁘장한데 미치광이풀이라니, 이명으로 쓰는 이름들도 미치광이, 미친풀, 광대작약, 뜻은 추천명과 대동소이하다. 가지과 특유의 맹독성 식물이라, 잘못 먹을 경우 속이 뒤집혀 미쳐 날뛴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과거에는 덩이뿌리를 진통제 등 약용으로 쓰느라 멸종 위기까지 갔다 하는데 값싼 중국산 약재가 들어오면서는 흔한 꽃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도 국가에서는 여전히 희귀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 일본 등지에도 분포한다고도 하고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4월초에 산에 오르면 습한 바위계곡 가득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북방계열 식물이라 이런 광경은 중부 이북 얘기이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보기가 어려워진다. 천마산, 광덕산 등지엔 드물게 흑자색이 아닌 노란색 꽃이 피는 미치광이풀을 볼 수 있다. 다만 아직 별개의 종으로 인정받지 못해 노랑미치광이풀은 노랑앉은부채처럼 국생종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