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는쟁이냉이, 노랑제비꽃
봄꽃이 일찍 피는 이유는 북사면의 봄이 짧기 때문이다. 4월이면 북사면 계곡의 활엽수 잎들이 자라나고 곧 햇볕을 가리기 때문에 여리디 여린 이른 봄꽃들은 버틸 수가 없다. 활엽수 잎이 하늘을 덮기 전 수분을 끝내고 번식을 해야 하기에 서둘러 꽃을 피우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엔 천마산이 있다. 야생화의 천국이라 소문이 나 이른 봄이면 전국의 야생화 애호가들이 찾는다. 이른 봄이면 온갖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발디딜 틈 없이 피는 곳이건만 희한하게도 4월 중순이 되면 그 꽃들이 모두 사라지고 썰렁한 계곡만 남는다.
그 즈음 마지막으로 계곡을 지키는 꽃이 바로 는쟁이냉이다. 십자화 꽃이 아름다운 냉이. 산갓으로도 유명해 옛사람들은 는쟁이냉이 잎을 따다가 물김치를 담가먹기도 했다. 나도 이른 봄이면 종종 잎을 따 맛을 보는데 알싸한 맛이 일품이다. 냉이는 이른 봄 우리가 캐먹는 나물 말고도 개갓냉이, 좁쌀냉이, 황새냉이, 다닥냉이, 물냉이, 미나리냉이, 말냉이 등, 자생 종류만도 40여 종이 넘는다. 그중 깊은 산 계곡에 사는 냉이는 는쟁이냉이가 대표적이다.
종류가 많기로는 제비꽃도 마찬가지다. Violet이라는 이름때문에 제비꽃은 모두 보라색인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제비꽃은 청색, 보라색, 흰색, 노란색 등 색도 다양하고 종류도 분류법에 따라 우리나라에만 60종이 넘는다고 한다. 내가 지금껏 본 제비꽃만도 태백제비꽃, 남산제비꽃, 장백제비꽃, 금강제비꽃, 뫼제비꽃, 졸방제비꽃, 고깔제비꽃 등, 25종 정도다.
는쟁이냉이가 필 무렵, 천마산에 피는 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노랑제비꽃이다. 다른 제비꽃과 달리 무리를 지어 피기 때문에 4월 능선에 노르면 노랑색꽃이 융단처럼 펼쳐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봄꽃은 아래서부터 올라가고 여름꽃은 위에서 내려온다는 말이 있다. 이름 봄꽃이 보통 산기슭 계곡에서 시작하는 반면, 그 꽃들이 질 때쯤 햇볕 따뜻한 남쪽 산 위에서도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그 시작을 알리는 꽃이 바로 노랑제비꽃이다. 는쟁이냉이와 노랑제비꽃이 피면 이제 계곡의 봄꽃 놀이가 끝나고 산 위 햇볕 따뜻한 곳에서도 꽃이 핀다는 신호다. 천마산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