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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학 Sep 29. 2024

야생화 이야기

36 광릉요강꽃, 복주머니란

강원도 화천에 비수구미 마을이란 아주 특별한 곳이 있다. 비수구미(秘水九美),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관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파로호 물이 초입까지 닿아 있고 마을 한가운데로 맑은 계곡 물도 흐른다. 서너 가구가 동화처럼 모여 사는 마을, 이름처럼 비밀스러운 곳이다. 


이 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5월 초에 가면 활짝 개화한 광릉요강꽃 1000여 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야생이라면 전국 다 합쳐도 300~400촉에 불과한, 멸종위기종에서도 최상위에 속하지만(나는 M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가 우연히 만나 춤까지 추었다), 이곳엔 개화하지 않은 꽃까지 무려 3000촉을 넘는다고 한다. 이곳 마을이장 장윤일 씨가 '평화의댐' 건설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꽃 대여섯 송이를 캐와 증식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광릉요강꽃: 키가 30~40센티미터로큰 편이다. 꽃은 복주머니란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

야생화가 멸종 위기에 이르는 이유야 많겠지만 광릉요강꽃은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꿀샘'의 입구가 좁은 탓에 나비 같이 커다란 곤충은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고, '타화수정'이라 그 복잡한 과정을 두 번씩 반복해야 한다. 더욱이 난초과 식물이 대개 그렇듯, 수정과 발아에 균류의 도움이 필요한 탓에 발아율이 2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멸종위기가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이다.

광릉요강꽃: M산에서 우연히 만난 광릉요강꽃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인간의 손이다. 발아가 어렵다 한들, 비수구미 마을처럼 식생만 맞는다면 어떻게든 식구를 불려가며 살아가련만, 귀한 식물일수록 비싼 값에 거래되기에 화초꾼, 약초꾼들의 마수를 피하기가 어렵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광릉요강꽃, 복주머니란 같은 화초가 여전히 한 촉에 10만~2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복주머니란: 꽃이 개불알을 닮아 개불알꽃으로 불렸다가 복주머니란으로 바뀌었다.

이 마을에는 광릉요강꽃 비슷한 멸종위기종 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복주머니란(개불알꽃)이다. 광릉요강꽃과 비슷한 이유로 멸종위기에 몰렸지만, 이 꽃도 이곳에서만은 개화한 꽃 수백 촉을 만날 수 있다. 나도 자연에서 이 꽃을 만난 것은 2017년 일본 레분 섬에 갔을 때뿐이다. 

복주머니란: 광릉요강꽃과 같이 복주머니란 속으로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다.

하나의 식물은 고도, 기온, 바람, 햇볕, 세월 등이 협력해 만든 창조물이라 일반인이 키우기는 쉽지 않다. 아까 지적했듯, 광릉요강꽃 같은 난초는 공생균의 도움까지 받아야 하기에 국립수목원 같은 전문기관에서도 증식에 쩔쩔 매는 형편이다. 비싼 돈을 주고 혼신을 다해 키워봐야 1~2년을 넘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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