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서 12년 가까이 근무한 후 이직을 했다. 새롭게 시작한 지 몇 달의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 만난 동료들은 나라는 사람의 모습뿐 아니라 업무스타일까지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었다.
어느 날 업무상 관계가 가까워진 다른 팀의 5년 차 대리와 티타임을 갖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회사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매우 노력하고 있다면서 나에게도 좋은 조언이 없는지 질문을 건넸다. 그 친구는 업무평판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평범한 직원이었고, 지내온 과정에서 크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것으로 인지하고 있어서 나로서는 성공에 갈망하고 있다는 그의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어떤 노력을 하고 있냐고. 그 친구가 시간을 쏟고 있는 것은 주로 한 가지였음을 알게 되었다. 소위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서 CEO로 성장한 분들의 자서전을 읽고 있고, 유명 CEO들의 가치관과 관련된 경제잡지의 칼럼 등을 읽는 것뿐이었다. 저녁에 남아서 업무 관련 기술정보를 찾아본다거나 실제 생산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등의 대답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약간 실망스럽고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물론 그러한 내용이 큰 틀에서 옳은 생각을 가지고 일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실무를 처리하는 실력을 키우면서 주변 업무 파트너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데 도움이 될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 삼아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조금은 현실적인 업무태도에 대한 의견 하나를 내놓아보았다. 예상대로 감흥 없는 모습과 뻔한 얘기를 들었는데 예의상 맞장구치는 듯한 모습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제야 왜 그 친구가 성공에 대한 노력대비 보여주는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누가 나에게 업무적으로 성장하게 된 방법들을 물어본다면, 물론 많은 선배와 동료들의 조언과 지도가 가장 큰 부분이지만, 그중 나 자신 스스로 찾게 된 방법을 꼽으라면 내가 보낸 이메일을 통한 성장이었다.
내 스토리에서 몇 차례 반복되는데 나는 공공도서관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25년의 직장생활 중인 지금도 매주 2~3차례는 저녁이나 주말 시간을 공공도서관에서 보낸다. 첫 직장에 입사한 지 4년 차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년여간의 공장건설 후에 시험생산과 안정화를 거치고, 조금씩 나만의 업무들이 늘어났을 때다. 그 주말도 도서관에서 회사 노트북으로 많은 자료들을 읽고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보낸 편지함의 내용을 검색하게 되었다. 내가 남에게 쓴 이메일들이 있는 폴더이다.
그날 몇 가지 내가 보낸 이메일을 보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몇 달 전, 몇 주전, 바로 어제 보낸 메일들.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회사에서 보내는 이메일은 소통의 도구이다. 그런데 내가 다시 본 나의 이메일 중 대다수는 실패한 소통의 샘플들이었다. 수신자가 누구인지도 확실치 않게 보내고, 업무의 결과를 받게 되는 다른 기능부서는 수신에서 누락되었고, 실제 업무를 수행해야 할 직원들이 아닌 내 상사가 수신자이기도 하고, 필요한 결론과 나의 의도는 내용 중에 숨어있고, 왜 이 일이 진행되는지 배경이나 목적도 없고, 핵심의 전달보다는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 요청인지 지시인지 모를 무례한 표현들 등.
25년이 지난 아직도 내 이메일은 고칠게 많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경험과 고민 없이 30년을 근무한 분들의 이메일은 나보다 더 프로답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요즘은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이메일을 종종 사용한다. 회사생활을 하는 직원이라면 불편하지만 내가 보낸 이메일, 즉 공식적인 소통의 시작물에 대해 가끔씩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러한 반성과 노력의 과정에서 내 글을 읽는 대상, 배경, 목적, 원하는 결과물들이 보다 좋은 표현들로 채워진다면 이메일뿐 아니라 다른 보고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내 사진을 보는 것처럼 부끄럽고 불편할 수 있겠지만, 일주일 전의 이메일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는다는 것은 일주일 전의 나보다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성장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