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오늘 동참한 제자들과 그 가족 모두가 복과 수명이 증진하고 구하는 일 모두가 뜻대로 되오며, 일 년 동안 산과 들로 주유하여도 아무런 어려움 만나지 않고 재수대통 하도록 보살펴주옵소서.
나무서가 모니불 나무서가 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서가모니불
‘그러니까 너희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노 다니는 것이 내 근심 걱정이 나에게 잡히지 않는 것과 닿는다는 것인가’
겨우 3만 원짜리 방생을 하면서 기원이 길었다.
- 저 너무 오랜만에 들러서 방생하는 방법을 까먹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요?
- 가족 수대로 기원하는 겁니다. 메기는 한 마리에 만원 잉어는….
- 메기 3마리로 할게요
잉어까지 해본 적은 없다. 그러니까 그만큼 깊은 근심이 아니라는 말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돈 몇만 원에 근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애초에 생각하지 않는 것. 후자가 더 현명한 판단 같았다. 늘 그래왔다. 무언가를 믿고 의지해서 삶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나마 오늘 방생을 하겠다고 온 것은 일종의 성의표시다. 남의 말을 듣는 것. 그중 가족의 말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 오늘은 꼭 잊지 말고 방생이라도 하세요.
잊지 말고 방생이라고 한다면 , 방생이 오늘 해야 하는 일 중 우선순위에서 몇 번째 중요한 일일까.
사람은 참 비겁하다. 아 아니다 이기적이다라는 표현이 맞겠다. 생명을 놓아주는 방생을 하는 것도
내가 이리저리 채이다가 마음 둘 곳 마저 없어지니 그때서야 '방생이라도 할걸' '방생을 안 해서 그런가' 라며 이리 간사하게 굴다니.
어릴 때 동자승 나이일 때, 그때도 방생을 해본 기억이 있다. 불자들이 다 참여하는 날 행사니까 내 마음으로 둘러온 것은 아니었겠지만 , 그때는 무언가 얻기 위한 방생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산천을 주유하는 모든 생명에게 별 탈 없으라'라는 자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리니까. 어렸으니까 조금 덜 오염되었으니까.
지금의 방생에 이리도 부끄러워지는 것은 "바램" 때문이다. 불운은 피해 가길 바라고, 행운은 도처에 닿길 바라며, 내가 손대며 파는 생물에 대한 업은 씻기길 바라는 마음이 더해졌으니. 참 복잡 다난한 생명 놓음이다.
생명 놓으려 보니 , 예전처럼 강 앞쪽으로 놓아주지 말란다. 앞으로 놔주지 말고 뒤편 판자옆 구멍으로 놓아주라고. 바로 이유를 들었다 "앞쪽에 새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물고기가 오면 바로 잡아먹어요"
새들의 영특함에 기가 차기 전, 나는 얼마나 오염되었는가 다른 생각을 했다. '이 판자 옆으로 난 구멍은 다시 물고기 통으로 이어진 거 아닌가?' 나중에 걸어 나오면서 생각은 달라졌긴 하지만 말이다.' 어차피 나는 기도 하고 놔주는 거 물속으로 가던 다시 통으로 가든 무슨 상관인가. 내가 어디까지 소유하겠다는 것인가'
내 편협한 생각이 맞는 것 같지는 않고, 정말로 새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기도까지만 허용하겠다는 단엄인가. 새들은 눈도 안 마주치고 사람이 물고기를 방생하길 기다리고 있다. 기도와 평온함이 없다면 사실 여기도 불 꺼진 지옥이랑 다른 게 무엇인가.
아니다.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좋은 생각으로 가자. 세상 도처에 모든 것을 이렇게 뾰족하게 볼 일인가.
이것도 내가 다 마음이 좁아져서 그렇다. 자꾸 조여져서 살아 그렇다.
어쩌면 나는 큰 시련에 걸리지 않아 아주 낮은 부담 속에서만 사는 좀 작고 부족한 고기가 아닐까?
큰 대가를 얻는 사람들은 큰 시련도 같이 받는다고 하니 나처럼 소출이 적은 자들은 그냥 소소하게 부스러기처럼 사는 행운, 그러니까 방생에도 안 걸리고 , 천하 주유는 없어도 이 동네에서 평온하게 해 뜨는 하루부터 해진 저녁까지 감싸고 사는 것. 머 그런 삶이라서 별일 없는 것 아닌가. 노력하지 말까?
방생하는 메기보다 작게 사는 나를 누가 질책하지 않을까? 괜찮겠지?
자! 우선순위 중 하나를 덜어냈다. 나머지 근심들은 어디에 내려놓을까. 받아주는 곳이 없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