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by 밥 짓는 사람

먼저 편견부터 들고 나와야겠다.

와이프는 학원 강사다. 대학원 시절 벌이가 변변찮은 남자친구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하던 것이 어느덧 직업이 되어 경력으로 따지면 회사의 차장 급, 혹은 부장 진급을 목전에 두고 있는 그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와이프 덕에 우리나라의 사교육 규모가 프로야구를 찜 쪄먹을 정도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 생태계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큰 부분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큰 생태계의 일원인 와이프에게 '제자'들이 있다. 어떤 제자에게는 내가 치던 기타와 앰프세트까지 선물로 준 적이 있다. (세종대 지원했다고 하길래). 명절이 되면 제자들이 소소한 선물도 보내고 , 가끔은 제자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서 만나기도 한다. 가르치는 사람의 기쁨이라면 , 특히 그 과정이 사교육의 정점이라서 어쩠던 명문대에 입학을 하게 되면 그 스토리를 만든 선생과 제자 모두에게 영광이 되는 것.


여기까지는 내 편견이 작동할 영역이 없다. 그런데 내 편견은 몹시도 근본적인 부분에서 작동한 것이다.

"제자"라고 하는 단어였다. 내 편견이다. 그냥 수강생 아닌가? 학원비 내고 배우는 아이들. 그러니까 지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올해 일정에 맞춰 선생을 고르고 엄마에게 돈을 타서 (혹은 카드로 결제해서) 사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서비스 이용자의 만남.


제자라는 단어는 말이지. 학교에 가서 선생님으로부터 배움을 얻고, 그 배움 속에서 인생의 가치를 배우고 삶의 자세를 견지하며 , 이후로도 나의 삶이 사회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선생과 제자'에서 나오는 단어 아닌가?


이러니 말이다. 내 편견은 편견이라는 단어를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이 적대적이고 , 반사회적이며 , 한심하기 짝이 없다. 편협한 지식으로 제자라는 단어를 재단하는 것도 모자라서 현재의 교육에서, 아 아니 아이들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라니.


학교에 있는 선생만 선생, 사교육은 강사. 이 편협함은 이렇게도 작동한다. 어쩌면 말이지. 클래식만 음악이고 대중음악은 음악도 아니야.라고 하는 사고도 , 머 이런 수준의 사고 아닐까?

머 아무렴 어때, 나는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 수준에서 살면 되지.


그러니까 이렇게도 편협한 사고를 가진 나 같은 사람도 보듬어서 돌아가는 게 세상이란 말인데.

혹여 나 같은 사고가 전염되거나 전체 사회를 오염시키는 좀비 반동분자 같은 병균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아니다.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이고, 편견 안에는 '본질에 대한 고민이 분명히 있다'라고 이야기해 줘야 하니까. 반대의 의견을 잘 매무시 잡아서 언제든지 이야길 할 준비를 해야지. 답답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의식이 충만한 사람으로 이야깃거리를 만든다.라고 할 수 있도록 말이지.


사는 트랙 모든 곳이 선생과 제자가 있어야 완성되고 돌아간다는 것. 칼 가는 아저씨에게도 배웠다. 자기가 가르친 제자 중 그 기술로 봉사 다니면서 좋은 일하는 '제자'가 있다고. 옳커니. 제자라는 말을 맞게 썼다.

칼 가는 아저씨는 선생이 맞다.


암튼, 그 제자 중 한 명이 와이프에게 선물을 보냈다. "곶감". 고급스러운 포장에 정성 가득한 이야기를 곁들여서 선물이 도착했다. 곁들여진 이야기와 와이프와 그동안 나눈 교분의 두께를 듣다 보니 선물로 온 곶감, 참 잘 골라서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고운 감으로 시간을 보내고 곱디 고운 손들 만 거쳐서 연하고 진한 맛으로 곶감이 된 관계. 고사에 나오는 '선물에 의미를 담아 관계를 보내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서.


와이프가 요즘같이 '태어나면서부터 등급에 맞춰 최선을 다해 살다가 중학생 정도가 되면 자신의 등급을 이미 알아버리고 체념하고 순응하고 사는 청춘들' 에게 그래도 최선을 다해 그 등급이라도 이기고 버텨보자고 조력하는 근사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니 '곶감은 그냥 곶감이지 '라는 내 편견을 또 삭히는 시간이 되었다.


편견만 삭히다 보니 , 오만에 대해 길게 생각하던 것도 사그라들었다.

오만은 어쩌면 그렇게도 무식한 내가 '겁이 나서' 꽁지 펼치는 공작새 같은 모습. 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다. 그러려니 하고 버티고 살다 보니 그 수많은 편견들을 들킬까 봐. 그래서 쇼 같이 입간판으로 세워 가리는 것 아니겠는가. 오만하지도 못하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편견이라도 좀 더 쌓을까? 오만이라도 하면 좀 있어 보이는 세상 아닌가. 그것도 먹고사는 재주라고 하던데.


편견 많은 나는 와이프 덕분에 그냥 감이 아닌 "정성 가득한 곶감"을 얻어먹고 있다.

이렇게 사소한 모순은 즐거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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