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텐바리 그리고 넷플릭스

안성기 배우님.

by 밥 짓는 사람




어머니는 48년 생이다. 시골에서 자란 탓에 문명의 이기들을 만날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들었던 단어 중 생경하면서도 입에서 잘 굴러서 외워진 단어가 있었다.

로텐바리. 예전 시골에서 논두렁 몇 개를 넘어 공터에 가면 가끔 열리던 가설극장이다.

자라면서 두어 번 로텐바리에서 영화를 보시고 , 서울에 상경해서 여공 생활을 하던 영등포에서 동료들과 한번 극장을 가보고, 그 이후 결혼 한 후에 딱 한번 아버지와 극장을 가봤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 평생 영화를 극장에서 보신 경험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라고 하시니 , 시절의 배려보다는 좀 적은 횟수다.

그렇게 배려 없는 문화생활을 누리신 어머니가 어찌 안성기 배우를 알고 계실까 하고 궁금해했는데, 다행히도 그 몇 번의 영화 관람, 그 다섯 편의 영화 중 무려 세편에 안성기 배우가 나왔다고 하니 세상의 모든 배우들 중 가장 유명한 배우가 아닐까 싶다.


그의 영화 필모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국영화사를 읽는 기분이 든다. 모두에게 알려진 영화들을 차치하고 나서도 , 한국 문학 그리고 영화사에서 ‘그’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 정도까지 진행될 수 있었을까 하는 작품들도 있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꼬방동네 사람들, 안녕하세요 하나님, 남부군 등 어찌 보면 당대의 톱스타가 굳이 저 장르 저 감독 저 원작에 기대어 얻을 것이 있을까 하는 통속적인 대중 기대를 배반하는 연기자였고, 그 덕분에 ‘그런 세상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라고 생각된다.


안성기 덕분에 급하게 부풀어 오르던 한국 문화 시장에서 틈바구니까지 영양분이 내려올 수 있었고 , 어찌 보면 단기간에 양적 성장에 만족할 수 있었던 우리의 문화지평이 크게 확대된 것 아닐까. 사실 이 글을 남기는 지금도 그의 자양분을 더 찾아보려 하다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역시 눈에 들어오긴 했었다. 전후 관계가 좀 있긴 하지만 , 제천이라는 작은 도시와 그의 영화의 유기적 결합. 그 이슈로부터 지금의 굽은 강만큼은 커오지 않았을까 하는 단편적 생각까지 말이다.

어쩌면 그의 부고를 읽게 된 팬이면서 팬이 아닌 우리 모두는 , 잘살면서도 잘 살지 못했던 몇십 년을 추억하고 ,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던 좋은 사람을 보내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은 그가 보여줄 것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좋은 영화 덕분에 얻은 많은 감정들. 그것에 대한 고마움도 한번 표한 적 없었는데 말이다.

“안성기 배우가 돌아가셨다며?”라고 정말 최근 모습 중 가장 쓸쓸한 어투로 말씀하시던 어머님께

넷플릭스로 영화를 찾아드리면 좀 좋아하시려나. 로텐바리부터 넷플릭스 까지 세월을 같이 살아온 배우의 영화를 다시 한번 소개해드리면서 그 청춘 두 분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곳에서의 여행을 끝낸 안성기 배우님을 다시 한번 추억하며, 그렇게도 아름다웠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안성기 배우를 한번 더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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