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원

by 밥 짓는 사람

그러니까 아버지의 도덕적 차림새의 맥시멈은 3만 원이었다.


무슨 이야기 인고 하니, 이런 명절이 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인데, 별 감정 없이 되려고 여러 번 되새김질을 끝낸 터라 나는 감정 소모가 없다. 화도 안 나고 웃기지도 않고 그냥 그런 일도 있었다. 하는 정도.


30대 중반, 아버지와 1년 두 번 , 명절만 만나고 있을 때, 아차차 정리가 잘못되었다. 늘 그래왔으니 아버지가 상수, 아버지가 사는 모습이 변수, 내가 사는 모습은 이 모든 답에 대한 적당한 나누기. 즉 가치절하.


아버지는 같이 사시던 분께 버림을 받으셨다. 그러니 혼자 사는 모습. 달가운 마음 반, 늙은 남자가 혼자 사는 것에 대한 걱정 반. 다행히 꼼꼼하시고 늘 깔끔하신 분이라 혼자 사는 모습이 더 정갈했다. 화장실에 휴지를 아끼기 위해 가스 충전소에서 받아온 사은품 휴지를 일일이 풀어서 개어놓은 모습까지. 아버지의 재산 1호 아디다스 운동화 정렬까지 , 그는 그다지 늙지 않았고 , 정렬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마석 가는 길. 원병원 앞에서 만났다. 이 길이 예전에는 춘천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 이런 명절에는 부산 가는 고속도로처럼 많이 막히곤 했는데 , 새로 고속도로가 뚫리고 나서는 길이 한산해졌다. 늙었다. 길도 동네도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도. 중간중간 신도시라고 이름 붙이고 사는 아파트 동네가 있긴 한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경춘 국도 마을길에 서 있는 모양은 아니다. 여기는 예전 시간부터 알던 사람만 닿고 늙어가는 것.


사실 이 늙은 길에 동행하는 것은 몇십 년 만이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성묘를 다니고 차례를 지내고 한 게 아마 대학교 1학년때. 그때까지만 해도 집안 꼴이 그럭저럭 서민 사는 모습이었으니까. 명절 되면 친척들끼리 밥이라도 먹고 그럴 때. 그 이후 그 친척들 사이가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고 나서는 볼일도 할 일도 없었다. 물론 우리 집이 가장 먼저 바스러졌기 때문에 남의 사정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냥 집안 가례는 일체 내 일이 아니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인가? 집안 어르신의 부음도 마찬가지. 나는 이미 그 집안사람들과 큰 드잡이가 있었고. '가능하다면 윤 씨 집안에서 저를 좀 빼주지요?'라고 전했다. 아차차 하나 놓친 것이 있다.

내가 이 집의 장손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리고 그전 할아버지가 장남이었고, 몇 대째 장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큰아들의 아들이었으니 내가 제사를 빼주라 마라 할 위치가 아니었다. 내가 안 하면 안 하는 거지.


그렇게 벌써 십수 년을 집안일에 참여 안 하고 있는데 , 며칠 전 온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게 화근이었다.

"너 저번에 내가 이야기한 거 기억하지. 나랑 벌초 좀 하자." 그 며칠 전 기분 좋으시라고 소주도 좀 따라드리고 말장단 맞추다가 술기운에 "네 네" 했나 보다. 그게 이 사태였고.


산소 와본 지 수십 년. 기억하는 건 마석 시내 굴다리 밑에서 산소로 가는 마지막 구멍가게를 들러서 어른들 드실 소주 사고 안주 사고 그렇게 수동면으로 올라가다가 수동유스호스텔 바로 옆 개울가. 그 옆 산길에 있는 선산. 이렇게 기억거리는 왕성했고, 틀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에서 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 물론 마석 시내도 예전과 다른 건물들이 생겼고, 심지어 이곳에 아파트 들도 생겼다. 나보다 찾아오라면 못 찾겠다.


산소 앞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산소 앞 도로. 그런데 무언가 주차 한 곳이 이상하다. 시선이 닿는 곳에 산소가 있어야 하는데 , 산소가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올라가는 산길은 콘크리트로 도로가 잡혀있고

산소가 있긴 있다. 그 주변으로 말이지. 기이하게도 단층집이 있고 , 옆으로는 공장이 있다.

그러니 이 모양새는 산소 주변으로 커다란 C 모양의 집이 있고 무덤은 이 집 마당에 있는 것.

당최 이런 모양새는 본 적이 없었다. 무슨 세도가 집안도 아니고 쫄딱 망한 집 산소 주변으로 집이 있고 저 집은 그렇게 빈곤한 모양새도 아닌데 , 빈곤한 무덤 3기를 감싸고 있단 말인가.


이 사연은 듣기만 했지 이걸 눈으로 보니 기가 차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선산을 팔아먹었다고 한다. 종손인 아버지의 동의 없이 말이다. 누가 누가 협잡을 해서 팔았는지 워낙 스토리가 복잡한데 , 결과만 보면 그냥 이따위 모양이 된 것이다. 산을 팔았는데 이장을 안 해서 그 무덤을 피해(?) 건물이 들어선 것. 사실 이게 현행법상 우리가 가해자 알 박기 같은 건데 , 산 사람이 무덤을 마음대로 이장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저런 기이한 모양이 된 것. 집안에 이 따위 일이 일어났는데 , 장손인 아버지에게는 누구도 상의를 안 했다고 한다. 아버지도 사는 게 가혹해서 몇 해 찾아오지 못했는데 막상 와보니 이런 모습이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 사실 난 아버지 저 말도 다 안 믿는다. 이런 건 국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같은 것이다. 피해자는 새벽에 물 대러 왔다가 사고 났는데 , 그 이후에 지나간 차들은 모두 '난 책임 없다' 이러고 있는 거지. 다 책임 있다.


그 이후 아버지가 무덤 위에 있는 주인집을 찾아가 사정을 말했다고. 지금은 바로 이장이 어려우니 조금 기다려 주시면 집안과 상의해서 이장을 하겠다. 무덤이 있는 것을 알고 산을 산 주인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별말 없이 허락했다고. 말이 쉽지. 아침에 눈뜨면 마당에 봉분이 있는 게 말이 되나. 말이 되나 말이 되나. 말로는 되지. 말을 어떻게 한 거지? 나는 지금 봤으니 해석이 안되고 있었다.


오늘 온 것은 벌초. 그 집은 목조주택이었고, 마당 쪽으로 거실 유리창이 통창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메고 있는 예초기의 모습을 공연하듯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갑자기 군대 훈련소에서 점호 시간 이후에 몰래 세면장에서 씻고 있다가 옆 소대 소대장에게 걸렸을 때, 경례를 차마 못하던 그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1사단 유일한 여 소대장이었다고 기억한다. 기이하고 부끄러운 것. 그런데 부끄러움이 사회적이지 않으니까 뻔뻔해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 예초기를 좋은 걸 사야 한다. 를 자꾸 되뇌었다. 빨리 돌지 않으니 강아지풀도 못 깎아.

손으로 잡아 뜯는 게 빠를 것 같은데. 전선으로 되어 있어서 나무뿌리는 못 잘라. 예전기억에 할머니 묘 쪽에는 칡이 자주 올라와서 이건 낫으로 끊어내야 하는데 , 이러면 칼날이 있는 예초기가 좋지 않을까? 돌에 맞아 칼날이 튀면 머리를 스치겠지? 그러면 거실 통창으로 보고 있던 저 집에서 응급키트 정도를 내어줄까? 마당에서 이렇게 명절을 맞이하여야 사자탈춤 같은 걸 하고 있는데.


머리를 그러니까 조상님의 봉분을 다듬었다. 머리를 깎는다는 표현이 맞긴 하는데, 예전에 어릴 때는 저 봉분 뒤에 이어진 저 언덕 위에서 썰매 타듯이 내려오면 ' 이놈. 할아버지 등에서 머 하는 거냐'라고 혼을 내기도 하던 사람들도 있었지. 지금은 남의 집 보일러실 정도가 그 등이 된 거 같으니. 봉분만 남기면 되는 거구나. 무덤을 남기고 집을 지을 때는. 봉분에 이어지는 언덕 같이 생겼던 것들은 모두 집이 되어 버렸다.

예초기를 껐다. 아버지 차 뒷자리에 보니 소주 댓 병이 있길래, 한 모금을 마셨다. 부끄러움이 좀 가셨다. 싼 술을 넘겨야 어울리는 상황이니까. 차례도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다시 부끄러움이 열기가 되어 올라왔다.

저 거실. 거실 통창에 블라인드 라도 내려와 있으면 참 좋겠는데. 하필 터 잘 잡으셔서 남향이다.

차례 준비를 마쳤다. 아버지가 일 년에 몇 번 안 입는 가다마이를 입고 왔다. 풀을 털어내고 게타리를 추스른다.

참 정장이 안 어울리는 냥반이다. 이럴 때, 한숨이 나왔다. 평소에 좀 입고 다니시지. 이 사소하고도 순서 없는 행사를 치르는데 옷차림까지 남루하네. 낡아서 남루한 것이 아니라, 저 싸구려 정장도 아끼고 닫아 넣어놔서 접힌 구김이 너무 살아있네. 가난을 표현하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저... 주인집에 가서 이거 드리고 와라" 차 뒤에 싣고 온 과일 박스였다. 어딘가에서 명절 선물을 받으신 줄 알았는데 , 무덤가 주인집 드릴 물건이었다. 들고 현관으로 갔다. 차임벨을 눌러도 사람이 안 나오길래 문 앞에 내려놓고 내려왔다. 물론 차임벨은 한번 눌렀고 반응이 오기도 전에 내려왔다. 아버지에게는 좀 길게 윤색해서 이야기했다 인기척이 없길래 여러 번 눌렀고 그래도 답이 없길래 현관에 공손히 내려놓고 왔으니 나중에 연락 올 거예요. 그렇게 차례는 지냈고 , 나는 돌아오는 길에 한마디도 묻지 않았고 , 다음 명절에도 묵묵히 아버지를 따라 그곳을 찾아갔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몇 년은 그렇게 명절 사자탈춤 같은 행위를 하신 것이다.

제를 올리는 것의 의미를 상쇄하는 행동. 갖출 수 있는 예가 모두 빠그라진 상태에서도 저곳을 찾아 아버지의 할아버지를 위해 술을 올리는 것.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겠냐?라고 한동안 나와 술을 마시던 친구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이게 정상이냐? 친구들 중 한 놈이 말했다. 네가 돈 벌어서 이장을 해.

"개 소리 하지 마! 내가 팔았냐?" 아버지는 누구에게 저런 말을 해봤을까. 그 양반 성정에 남에게 저런 말을 할 위인이 못되지 싶었다. 나에게도 산 판 사람과 산이 팔린 것에 대해 " 이건 말이지 , 비 보호 좌회전에서 서로 안 보이는 상태로 말이야 그러니까 누구 과실을 찾으면 뭐 하니"라고 그 가족 모두를 감싸는 칠칠하지 못한 그런 모습을 보이던데. 몇 남매의 큰 오빠. 큰 형. 그런 집안의 장자. 참 어찌 보면 위치가 딱한 사람이긴 하니 말이다.


아버지와 몇 번 찾아간 남의 집 정원 무덤. 갈 때마다 그 주인집에 가져다준 과일은 배. 가격은 다행히 폭등 안 한 시절이라 늘 3만 원. 아버지가 직접 그 집에 안 찾아간 이유는 "귀가 안 들려서 ". 집주인과 인사를 한번 한 적이 있었다. " 아버님이 귀가 안 좋으셔서 우리가 여러 차례 빨리 이장을 부탁드렸는데 너무 공손히 인사를 하시면서 과일을 놓고 가셔서요. 과일은 이제 안 주셔도 돼요. 아버님께 말씀 잘 부탁드려요"

그렇지. 예전 집안이 멀쩡할 때도 제사 지낼 때 격식 안 차리던 장자. 이렇게 남의 집 마당에 어른들 찾아뵙고 무덤가 주인이 보고 있을 때 인사를 올려야 하니 , 저 어울리지도 않는 싸구려 정장 바지를 꺼내 입고 온 것.

어떤 말이 들렸을지 모르는 것 아니었을 테지만, 3만 원 배 상자에 여러 가지 생각이 담길 수 있을까 하고 예초기를 싣고 몇 해 이곳을 드나들었겠지. 하필 아들도 비겁해서 주인집 차임벨도 다 안 기다리고 내려와서 그렇게도 성의 없는 절을 하고 떠나고.


몇 년 후, 이장했다. 다행히 명절에 3만 원 배 한 상자를 더 안 사도 되는 것만으로도 가벼워졌다. 모든 것이.


오늘이 명절 연휴 마지막 날이네. 갑자기 생각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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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그 선산이었던 곳 바로 앞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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