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

진미떡볶이

by 밥 짓는 사람


국민학교 1학년을 입학하고 한 학기는 용두 국민학교에서 다녔다.


반년 후 , 아버지가 친구와 돈거래를 잘못했는지 가족들은 흩어져 살아야 했다. 나는 신당동으로 가게 되었고 , 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몰랐다.


신당동은 큰집이었고 용두동은 둘째 할아버지 집이었다. 갈 곳이 없고 돈도 벌어야 했던 엄마는 용두동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게 되었다. 문간방이었다. 신당동은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어차피 명절 때마다 오던 큰집이었고 나는 귀하디 귀한 장손이었다. 변변치 못한 살림이었지만 밥 위에 계란부침 한 개가 올라올 때도 있었으니 딱히 불만을 가질 수는 없었다. 밤에 잠자리는 낯설었다. 한 이불을 길게 덮고 고모 삼촌들과 같이 잠을 자야 했다. 잠드는 시간에 꼭 잠들어야 했고 밤에 일어나 소변을 보려 요강을 찾는 일도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전학한 학교는 흥인 국민학교다. 낯설 만도 했다. 반 아이들은 싸움을 자주 했고 싸움의 수준도 꽤 높았다. 연탄도 던지고 돌도 던졌으니 말이다. 받아쓰기 수준도 달랐다. 아무것도 공부 안 해도 여기 애들보다는 점수가 높았다. 치기 어릴 나이는 아니지만 딱히 기죽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지 에미 품이 그리운 것이 당연한 나이다. 같이 사는.. 같이 밥을 먹은 이들이 식구고 잘해준다고 해도 지에미가 그리운 것과는 무게감이 다른 것이다. 할머니는 늘 엄마 욕을 했다.


엄마가 이 집안에 들어와서 집안이 망했다는 것이다.


큰아들에 대한 보상심리 치고는 좀 과했다.


이 집안은 원래 망해있었는데 말이다.


그냥 대상을 정하고 던지는 분노였고 화풀이였다.


그 여자의 아들이 눈앞에 앉아서 밥을 먹는데도 그러는 걸 보면 정상은 아니었다. 아이는 한 귀로 흘리는 법을 일찌감치 배웠다.


한날 오전 수업이 끝났다. 골목을 뛰면서 아이들과 노는 일도 무료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혼자서 청계천 쪽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연이어서 생각이 났다. “용두동 작은집 가서 엄마 보고 오자” 아진 운수 19번을 타고 가는 법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냥 걸어도 될 거 같았다. 어릴 때부터 전철 노선도 외우는 걸로 칭찬을 듣던 덕분일까. 스스로도 길눈이 밝다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가졌다.


용두동까지 두어 시간? 금방 걸었다. 개량 한옥은 동네에서도 못 사는 규모는 아니었다. 그렇게 기억한다.


문을 두드리니까 엄마가 나왔다. 같이 들어가서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리고 밥 먹고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아주 쉬운 일이다. 잘하면 어른들이 용돈을 줄 것도 같았다.


아니다. 엄마는 매우 당황해했다. 의아했다. 왜 반가워하지 않을까?. 이유는 마당쯤 들어갔을 때 알게 되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바로 들어오지 않아서 신당동에서 큰일이 난 것처럼 여기저기 전화를 한 것이다. 버스 탈 줄 아니까 용두동도 갔을까 해서 전화를 했는데 안 왔다고 한 것이다. 걸어왔기 때문이다. 이제야 발견된 것이다.


밥만 먹고 등 떠밀리듯이 용두동을 나섰다. 가방 속에 엄마한테 보여주지 못한 만점 시험지도 있었는데 말이다.


신당동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싸늘했다. 고모들은 등 뒤에 날 숨기려 하고 할아버지는 회초리를 들고 있었다. 거기까지였다. 회초리를 맞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전화를 다시 돌려 용두동 문간방에 있는 “그년”을 찾는다. 욕이 절반이 넘는다. 글을 읽고 알아듣는 “그년의 아들” 이 듣고 있는데 말이다.


전화를 끊고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울면서 소리쳤다. “ 왜 우리 엄마한테 욕해요.”


거기까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고 이후 신당동 식구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잘해줬다. 계란 프라이도 자주 올라왔다. 나는 또 시험을 잘 봤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나는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용두동에 혼자 갔다.


물론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개량 한옥 대문 사이로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는 모습만 슬쩍 보고 다시 신당동으로 돌아왔다. 저번에 왔을 때 등 떠밀려 버스 타러 가면서 엄마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네가 여길 오면 엄마가 혼나”


그때까지 였다. 엄마 부탁 들어준 건.


밥을 안 먹고 친구네 집에서 놀다 온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밥을 먹어야 했다.


그때마다 떡볶이였다. 엄마 밥을 대신했다.


엄마도 음식 잘 못했다. 떡볶이도 마찬가지다.


떡볶이를 누가 맛으로 먹나. 그냥 먹는 거지.


그래서 요즘도 그냥 먹는다. 그때 처럼 혼자 먹을 때가 제일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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