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요리 중
외가 어른들 중 광천 김을 만들어 팔았던 할머니가 있었다. 덕분에 광천김, 그 꼬들꼬들한 맛을 어릴 때부터 맛볼 수 있었다. 가끔 입맛이 없을 때 가난한 밥상을 감출 수 있는 별식도 있었다. 김 한 장에 묵은 김치 물에 헹구어 길게 찢어 김 위에 놓고 밥을 길게 올린다. 여유가 있으면 들기름 살짝 곁들여서 김밥처럼 둘둘 싸주면 그보다 더 든든한 한 끼가 없다. 동네 아이들이 밥시간 때 나만 빼놓고 무리 지어 ‘다방구’라도 할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골목으로 나가면서 엄마에게 약속만 하고 나가면 된다. “밥 굶지 않고 다 먹고 놀겠다 라고”
용두동 근처에는 홍릉이라는 능이 있었다. 용두 국민학교 아이들은 홍릉으로 소풍을 간다. 소풍 전날이 되면 푼돈 계산할 줄 아는 아이에게 몇 가지 먹거리 심부름을 시킨다. 분홍 소세지 하나, 단무지 하나, 계란은 마침 집에 있다. 마침 아버지가 있을 때다.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어내서 단촛물을 넣고 깨소금을 뿌린다. 김밥을 말기 위한 준비가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내일 아침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잠을 설치는 건 내 몫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싸는 엄마 옆에 앉는다. 음식을 잘하는 엄마도 첫 김밥은 삐뚤빼뚤 옆구리가 터진다. 그렇게 망한 김밥은 대충 썰어서 내 입에 들어온다. 대나무 일회용 도시락에 김밥을 가득 채우고 구멍처럼 남은 곳에 김밥 말다 남은 단무지며 햄이며 반찬처럼 넣어준다. 반찬은 아니지만 도시락 하나 가득 손길이 닿았다. 오늘만큼은 가난한 집이 아니다. 김밥을 말아서 풍요로운 하루다.
대학교 다닐 때 즈음이다. 김밥이 미국에서도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이름도 새로 얻어온 듯하다. 캘리포니아 롤, 드래곤 롤, 김밥은 커졌고 고급지게 변했다. 이즈음부터인가. 김밥의 국적도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음식이다. 일본이 고향이다. 한국이 고향이다. 말이 많아졌다. 물론 더 이상 소풍을 가지 않게 된 나이였다. 엄마의 김밥이 아니라면 국적이 어디든 나와 관계없는 일이다.
개그맨이 압구정동에 김밥 집을 열고 남쪽 통영의 충무김밥도 서울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한 끼의 식사로 김밥이 자리 잡았다. 김밥을 싸게 만날 수 있게 된 배경에 특정 종교가 있다는 소문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소풍날만 김밥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왔다. 통조림에 들어있던 참치는 김밥에 올라가서 자기 자리를 완전히 찾게 되었고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도 처음 만났다. 다들 한 번쯤 껍질과 김을 따로 분리하는 실수를 하곤 했다. 엄마가 준비하던 반나절의 준비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김밥은 매대에서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동의 새벽 , 김밥을 만나다.
그다지 성과 없는 저녁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속이 헛헛해져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집 앞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손에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청년의 동의 없이 그의 나이를 추측한다. 어림잡아 대학생 아마 그즈음의 연배일 것이다. 그는 손님 없는 새벽시간, 한쪽 구석에는 공학용 계산기를 놓고 한쪽에는 자정이 지나 더 이상 손님에게 팔지 않는 김밥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내가 그의 식사시간을 방해했다. 일면식도 없는 청춘이 이 새벽에 식은 도시락을 먹고 있는 것이 미안했다. 나는 무척이나 비루하니 저 청년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주고 있지는 않겠지만 청춘의 밤이 유통기한 지난 김밥과 함께 한다는 것에 미안했다.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자위해도 미안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구의역에서 꽃 같은 청춘이 우리 곁을 떠났다. 컨베이어 벨트 아래에서 분진 속에서 청춘이 떠나갔다. 일간지 1면을 할애해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한들, 라면과 삼각 김밥 사진을 올려 그들을 추모한다 한들 청춘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그 허망함을 누구에게 따질 수 있단 말인가. 김밥이 처연했다. 라면이 쓸쓸했다. 다들 그렇게 사니, 너무 황망해하지 말라는 말에 분노했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서서 밥을 먹고 쓰이다 버려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인가. 강남역 사거리에서 크레인에 매달려있는 노동자를 스쳐 지나가야 하고 노동자들이 몸으로 서로를 묶어 ‘그저 사람답게 먹고살게 해 주시오’라는 외침을 스쳐 지나가야 하는가. 너도 나도 각자의 지옥에 살고 있으니 너나 잘하라는 말만 되뇌란 말인가. 사회가 영속하기 위해서는 잘 사는 누군가에 의해 내려오는 낙수를 받아먹고사는 것은 안된다. 그것은 다종 다양한 사바나에서 서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는 동물들이 한계적인 룰을 지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편협하게 인간사회만 생각해 보자. 같은 종의 삶을 보장하지 못하고 멸절시키는 사회가 과연 무한하게 유지될 수 있는가를. 나는 다시는 일간지 1면에 김밥이 올라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엄마의 사람이 담뿍 담겨 하루를 설레게 했던 김밥이다. 그 정도의 사랑까지 담보할 수 없겠지만 , 하루를 사는 우리 모두가 겨우 김밥 하나를 입에 넣으면서 사는 것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지는 않기를 말이다. 우리는 서로 위로하며 살 수 있다. 그러지 말라고 하지 마시라. 너만 잘살면 된다고 하지 마시라. 다시 기억해보면 “홍릉 소풍 갈 때 우리 반에서 엄마가 김밥을 못 싸주는 애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 것은 다른 집 엄마들이 아무도 모르게 챙겨줬다” 우리는 그렇게 가난도 나누며 잘 살아왔다. 김밥은 메마른 음식이 아니다. 김밥은 사랑이 담겨있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