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붉은 기름

양평해장국

by 밥 짓는 사람


<고추기름의 맛>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에 만나던 사람은 한 그릇의 탕이나 밥을 선호했다. 덕분에 같이 밥을 먹는 시간에 소주 한잔 곁들여도 부담이 없었다. 어쩌면 지독한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지갑이 두껍지 않은 직장인을 생각해서 외식메뉴 중 그나마 부담이 덜 가는 음식을 선택해주었는지도.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양평해장국집을 찾았다. 나에게 물었다 " 내장국 먹을 줄 알아요? 저번에 보니까 은근히 음식 가리던데요." 반박을 바로 하거나 바로 수긍을 하면 저 말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한소끔 끓어오르던 뚝배기가 가라앉을 즈음에 말을 한다."아버지가 늘 해장국을 좋아하셔서 직접 선지와 내장을 사 와서 해 먹었어. 우리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먹던 음식이야."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거짓이다. 집으로 사 온 재료는 맞지만 '아버지'만 드셨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선호하는 음식은 정서적으로 거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돈도 안 벌어오면서 늘 당당한 아버지의 식습관까지 반대하는 정서였다.


몇 번 먹어보지 않던 해장국이다. 게다가 내장까지 저렇게 산처럼 올라와 있다니. 오호통재로다. 난재로다. 국물만 스리슬쩍 밥에 적셔서 깍두기나 먹으면 다행이겠다. 자주 먹지 않던 음식은 먹는 습관이 안 돼있어서 그런가. 방법을 외우지 못했다.


뜨거운 김이 빠져나간 해장국을 바라만 보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앞에 앉아있던 그 친구가 테이블 옆쪽에 놓여있던 무언가를 집더니 내 뚝배기 위에 술술 뿌린다. 처연하게 빨간 기름이다. 가뜩이나 내장과 조우함이 어색한 나에게 더 이상 이 뚝배기를 잡지 말라고 신탁받은 신녀처럼 붉디붉은 기름을 휘돌아 뿌려댄다. 나는 이제 이 식탁에서 멀어질 예정이다.


"국물 저어서 내장이랑 먹어봐요. 내장이랑 선지부터 먹고 밥은 나중에 말아야지. 이모 여기 소주하나 더 주세요"


낯설음을 강제하다니. 이 여자도 꽤나 폭력적인 부분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아직은 종속적 자세를 취할 의지가 남아있었다. 향기 나는 폭력이다.


젓가락을 들고 내장을 들어 올렸다. 붉은 기름에 범벅이 된 내장은 삶아지기 전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선정성을 다시 보여주는 듯하다. 붉은데 게다가 기름이다. 입에 넣었다.


야만의 맛이다. 그리고 그 맛을 감싸는 기름이다. 이렇게 직설적인 맛이 나다니. 착각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번 내장을 들어 올렸다. 입 주변은 이미 붉은 기름으로 범벅이 되었고 악관절 장애가 있는 턱은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 경험은 놓칠 수 없었다. 연신 공업용 희석주를 들이켜고 야만의 내장을 씹어 넘겼다. 오늘 같은 날은 낮에 사장에게 욕을 먹었어도 이 내장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 맛이다. 내장과 고추기름이다. 야만의 맛이고 맑은 국물에서 내 손으로 건져 올려야 할 맛이다.


오늘 , 적당히 폭력적인 언사를 가진 여자로부터 고추기름의 맛을 배웠다. 고추기름이 더 폭력적이라서 여자의 폭력성은 이해가 되고 매력이 되었다.


혼자 밥 먹으러 1층 양평해장국에 내려왔다. 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여자의 얼굴과 입술은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 이 붉은 기름과 내장의 단호함은 여전히 그 여자 대신에 기억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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