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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Jan 28. 2021

전자레인지는 나를 해치지 않는다.

바짝 붙어서 서있지 않으면 그 사람의 편견이 나를 해칠 리 없다.

'그렘린'에서 귀여운 동물 기즈모가 어느 순간 그렘린으로 변했다. 물을 만난 탓이다. 귀여움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살해 의식을 행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인간(인간이 주인공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아무리 악역이어도 그렘린이 타이틀 롤을 따서 들고 있는데 말이다.)은 슬랩스틱을 섞어서 방어한다.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기도 하고 '그 귀여웠던' 전직 기즈모에게 칼질을 하면서 살아남는다. 전자레인지에 그렘린을 넣고 돌려 터지게 하는 부분도 있다. 어쩌면 전자레인지에 대한 내 공포는 가전제품 설명서에 나온 주의사항이 아니라 영화 이즈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전자레인지에 대한 편견은 나에게만 작동한 것은 아닌 듯싶다. '전자레인지 전자파'라고 검색하면 아주 자세한 설명부터 그 속설을 믿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무식한가에 대한 조소까지 다양하게 나열되어 있다.

마이크로파는 음식의 수분만 가열할 뿐이며... 그 정도까지만 읽어도 내 편견은 매우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단 한 가지. 기계가 작동할 때는 가까이 가지 마시오. 정도는 참고할만하다. 대부분의 생활용 전자기기에는 매우 당연한 이유가 커다란 마크와 함께 단호하게 적혀있다. 그 아래에는 소비자 보호센터 전화번호가 있다.


"네가 좀 참아라. 쟤 성격이 원래 저렇게 모난 놈은 아니야"  "그 사람 성격 보통 아니라던데?"

안전수칙 같은 수식어를 미리 받고 사람을 만나는 경우다. 결과물을 만들지도 않았고, 사실 알고 보면 결과물을 만들 사이가 될 것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도 친절한 '사용 시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친절함을 만났을 때 , 응당 그 주의사항을 기억해야 하는 의무가 나에게 있는 줄 알았다. 몸이 피곤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몸이 비루해지고 열정이 사라지는 시점이 오게 되면서부터 "내 주의사항"에 더 신경 쓰게 되지, 나와 같은 선로를 쓸 것 같지도 않은 인연들의 면면을 주의하는 것은 쓰레기 분리수거 집중력보다 떨어지는 일이 되었다.


아침에 우유 한잔 점심에는 패스트푸드.. 같이 흥얼거리면서 외워지는 노랫말 가사가 아니라, 아침에는 알약 5개 , 점심에는 알약 한 개  쫓기는 사람처럼 시곗바늘 보면서... 이렇게 가사가 바뀌면 사실 주변 화면은 뿌옇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같은 일에 분노해주는 것은 사회정의요 , 같이 슬퍼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니, 오늘도 나는 인간의 길을 이탈하지 않기 위해 굳이 분노할 일을 찾고 , 굳이 공감지수에 허겁지겁하며 , 하루를 보낸다.

웃기는 일이지 않은가. 엄마 젖에서 눈을 떼고 고만고만한 또래의 아이들과 만나 결속됨을 배우라고 강제당하고 사는 것이 교육이라고 이름 지어지고, 그 교육시간 시작 전부터 "떠든 아이"를 칠판에 적는 사회고발 의지를 강제하고 칭찬받아오는 반복 훈련도 모자라, 이제는 사람 하나 만날 때에도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해 , 어디서, 누구를 만난다"가 아닌 그 사람의 사용 시 주의사항을 반사적으로 듣고 반동적으로 소화해야 하나.

안타까운 일은 사용설명서상 주의사항이 거의 없거나 설명서가 단출할수록 "내게 더 가치가 있는 사람" 일 가능성이 높다.  비싼 녹즙기를 사보고 깨달았다. 번잡스러운 버튼도 없고 씻는 것도 간편하니 말이다.

전자레인지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안의 내용물이 돌아가는 것을 보는 사람은 드물다. 그 정도 행위는 정말 전자레인지를 조롱하는 것 같지 않은가. 전자레인지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불이 켜지고 꺼지는 순간 문을 열면 해롭지 않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이 순간에도 전자레인지 근처에 있으면 생식능력이 감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을 최대한 멀리 뻗고 술안주를 덥히고 있는 나를 기억하게 된다.


그 까칠한 설명서를 지닌 사람도 찾아보면 온/오프 스위치로만으로도 잘 가동이 될 것이다. 내가 무리해서 이것저것 시도하지 않으면 나에게 해를 입힐 리 없다. 전자레인지는 충분히 안전하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전자기기 자체를 다루는 것이 귀찮고 그 게으름이 미덕인 줄 알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은 그것마저도 허용치 않겠지만 말이다. 여전히 전자레인지는 무섭다 라고... 말이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배우고 익히기 싫어서 그런 척하는 것이다. 그래도 살아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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