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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Feb 18. 2021

반생이

없어져야 할 노동자는 없다.

반생이


“반생이 묶어라” 일용잡부의 급이 정해졌다. 몰탈 봉투나 여미고 , 미장 아재가 모래 치라고 하면 삽으로 모래나 치던 하루가 지나고 , 오후쯤이 되었나. 아랫마을에서 살고 있는 홍씨 아재가 반생이 묶어라 라고 시켰다. 처음에는 말을 못 알아들었고, 두 번째는 그 쉬워 보이는 철사줄 묶는 것도 요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후가 지나고 남는 철근. 아시바 핸들. 비계 사다리까지 초짜였던 나에게 반생이 묶는 법을 용케 알려주신 홍 씨 덕분에 내일 아침 현장은 못 하나 없이 밟고 들어올 수 있겠다.


반생이. 대한민국의 노가다 판 언어가 다 그렇듯이 일본말에서 왔다고 한다. 반선이라고 한다.

불에 구운 철사를 호수에 맞게 나눠 놓은 것이다. 반생이 잡아 시누? 시노에 걸어 돌려 감고, 짧으면 뻰치로 감고. 그래도 돌가루 밥 며칠 먹게 되면 잘린 철근 하나와 반생이만 들고도 현장 비계는 다 감아 치고 다닌다. 감치기 중 비계를 감을 때 긴장 안 하면 이층에서 일하던 아재가 일층으로 큰소리 내며 떨어질 수 있으니 반생이 치는 일도 안전선 같은 것이다. 사실 별거 아닌 사람이 별거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반생이 철사는 열처리를 당했다. 인장력으로 따지고 보면 철사가 늘어나서 테이핑이 되듯이 바짝 붙어버리고 한번 치고 난 반생이 풀어서 새로 감으려 하면 장력을 다 써버려서 ‘뚝’하고 끊어지게 된다. 그러라고 있는 철사다. 현장이 철거될 때 바닥을 보면 수많은 반생이가 장력을 다하고 끊어져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현장이 마무리되면 말이다. 일당 잡부들은 서로 갈 곳이 없어 눈치만 보고 그나마 기술이 있는 목수나 야스리 치는 형들이 쭈뼛대는 잡부들 몇 명 데리고 간다. 조적질도 못하는 아이들 데려다 줄이라도 잡게 가르치는 것이다. 사람 어떻게 버리는 줄은 모르는 듯하다. 물론 잡부로 평생 늙어온 홍 씨 아저씨는 조적질도 웬만큼 하고 배선 쪽도 탄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 어디 있다고 말이다.


이번 명절. 톨게이트에서 있어야 할 파업은 사그라들었다. 협상이 된 것인지. 실효성이 없는지, 노동자들이 파업을 해도 별 영향이 없는지.  파업 전야. 뉴스는 파업 때문에 두근두근한 김 씨 아줌마에게 가혹할 만큼 소리를 쳐댄다. “ 설날에 이게 먼 지랄이냐고”

사장단이 따로 구성되고 워크아웃이 실패한 조직인지 내가 알게 모냐. 김 씨 아줌마는 욕만 직쌀나게 먹었다. “ 필요도 없는 일자리에서 기껏 먹고살게 해 줬더니 기어올라 상투 잡으려 한다고…” 나이가 몇인데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고 쯧쯧”

뉴스가 가혹한데, 그냥 지나가도 좋은 사람들도 눈빛이 좋지 않다. ‘ 이래서 대한민국이 안 되는 거야’ ‘ 노동자가 벼슬이야’ ‘ 어차피 없어질 자리면 빨리 다른 자리 알아보던지’

오줌 마려울 때 오줌 참아가며 일했던 자리다. 동전 돈독이 올라 손끝으로는 딸년 집 현관문 번호키도 안 눌리는 손이다. 하청으로 가는 게 무엇인지도 , 그저 월급만 나오면 사람 구실 하는 거 같아서 버텼는데 ,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이 욕을 한다. 없어질 주제에 말이 많다고.


잡부들이 모래랑 시멘트 잘 섞으려고 전날 밤 가운데 폭 파이게 둔덕을 만들어 두면 꼭 지나가는 동네 애새끼들이 오줌 갈기고 간다. 지들 오줌 싸라고 파놓은 구멍도 아닌데.

홍 씨 아저씨 욕이 시작된다.” 캬악 , 육시럴 놈들. 그냥 지나갈 노릇이지. 삽질 한번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줌이나 싸고 가네. 지들 집 방향으로 갈기던지. 굳이 왜 이 구녕에 갈겨”


반생이 같다. 없어지는 노동자들은 장력이 다 떨어져서 쓸모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구운 철사였는데 말이다. 거푸집 올리기 전 반생이 없으면 기우뚱해 버릴 기둥인데.

또 또 욕지거리들이다. “누가 요즘 톨게이트에서 사람한테 돈 내냐. 하이패스지. 없어도 돼. 저런 사람들”


반생이 만도 못 한 것들이 그저 오줌이나 갈길 줄 안다. 지 집에다 갈기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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