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무지

석관동 안기부 앞

by 밥 짓는 사람

#단무지 어릴 적 석관동은 안기부가 있던 곳이다. 부엌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 도로. 도로에는 어지간한 날이 아니면 차가 들어오지 않았다. 부엌문이 대문인 집. 단칸방 그곳에서 국민학교 2학년을 다녔다. 가족들은 흩어져있었고 나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었다. 하루를 마치 즈음 , 해가 지려고 하는 그때쯤이면 가발공장에서 일하고 오는 엄마를 만난다. 하루가 지고 해도 떨어지고 저녁밥을 챙기려면 찬거리가 있어야 한다. 동태 한 마리는 오백 원. 단무지 한 줄도 오백 원. 아버지 술안주로 자주 올랐던 동탯국은 아이에게는 비렸다. 엄마 심부름으로 구멍가게 앞에 선 아이는 반동적인 선택을 한다. 단무지 긴 거 한 줄을 사들고 집으로 간다. 돈이 남았으니 달걀도 두어 개 집어간다. 하얀 알이 팔십원. 노란 알이 백 원이다. 하얀 알은 청승맞지만 알이 좀 더 크다. 오늘 저녁은 단무지에 고춧가루 살짝 넣고 설탕 솔솔 , 찬장에 남아있던 통깨를 뿌리면 뜨거운 밥솥 스위치가 딸칵하고 올라가기만 기다리면 된다. 곤로 위에 올려놓은 검정 후라이팬 . 손이 늦으면 달걀이 붙어버린다. 오늘 저녁은 소리 나지 않고 조용하게 한상 마무리한다. 티브이를 보려면 두어 칸 넘어 골목 끝 삼촌집에 가야 하니까 오늘은 그냥 엄마가 얻어온 여성잡지나 보련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남태평양이라는 곳 이야기가 나온다. 부엌문을 열고 길가를 바라본다. 군인들이 서있는 높은담 위로 신기하게도 미리내가 보인다. 여기는 석관동 안기부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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