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에 또 아이를 그리워하다.
드라이브 쓰루 코너에서 익숙하게 스피커를 통해 주문한다. "에그머핀 하고 커피 주세요"
세트로 포장되어 나오는데 감자크로켓은 바닥에 접어두고 고속도로 올라가는 진입로를 돌면서 아직 뜨거운 에그머핀을 한입 베어문다. 종이 냄새 그리고 기름냄새, 왠지 아침에 먹는 음식들에서는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은가. 종이컵에 구겨 넣어 설탕을 담뿍 바른 토스트. 비닐봉지 안에 담겨 한 줄 포장으로 겨우 구겨지지 않고 모양을 잡고 있는 아직 덜 식은 김밥. 그리고 포장지는 대형 프랜차이즈 지만 역시 종이냄새 풀풀 풍기는 에그머핀까지. 아침을 여는 음식들은 꼭 종이와 비닐과 그럭저럭 경공업의 냄새가 난다.
에그머핀에 올려져 있는 계란프라이는 사실 내가 혐오하는 형태다. 나는 계란은 반숙 이외에는 입에서 넘기지를 못한다. 까탈스럽다고 하는 소리를 들어보기도 했지만 , 우리 모두 사소하게 갖고 있을 음식으로부터의 상처 한 가지씩이라고 둘러 넘기면 괜찮은 이야기다.
중학교 때였던가. 독서실 앞에 계란프라이 자판기가 있었다. 지금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기계인 전자레인지. 그 전자레인지가 자판기 안에 들어가 있는 기계였다. 천 원인가 오백 원 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 돈을 넣으면 넓은 종이 그릇에 계란이 툭 떨어지고 이것을 전자레인지가 가열하여 익으면 사출 되는 방식.
계란 프라이에 습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플라스틱 모형같이 말라버린 맛. 그것도 신기하고 맛있다고 몇 개씩 사 먹다가 어느 날 탈이 났고 그 질감. 특히 익어버린 계란 노른자의 단단한 맛. 차라리 병아리 생살을 씹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거부감이 들었던 기억. 머 이 정도로 입으로 주저리주저리 나열하면 일부러 계란 완숙을 대접하는 경우는 없지 않을까.
에그 머핀은 좀 예외다. 아직 식지 않은 포장에서 꺼내서일까. 아니면 아침시간 별다른 선택의 여유가 없이 받아온 메뉴라서 그런 것일까. 적개심에 가까운 계란 완숙의 질감을 유일하게 극복하는 음식. 에그머핀이다.
사실, 에그 머핀을 요즘 들어서 더 사랑하게 된 것은 사적이고 사소한 이유 때문인데,
에그 머핀이 담겨있는 뜨거운 종이봉투를 받으면 맨 처음 하는 일은 봉투에 코를 박고 그 뜨거운 냄새를 한번 크게 들이켜는 것. 운전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봉투를 코에 넣고 큰 숨을 쉬는 것.
단백질이 변형된 뜨거운 냄새. 그리고 기름이 둘러치기 한듯한 싸구려 번의 냄새. 어쩌다 옵션으로 넣기도 하는 베이컨의 꼬릿 한 냄새. 이 냄새들이 종이봉투와 적절하게 어우러져 마음의 평안을 주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 안녕한 냄새로 기억되는 그것과 싱크가 크게 맞는 냄새.
백일 전 아이의 똥 기저귀 냄새다.
나는 걱정이 많아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이 아이가 트림을 했던가. 잠들기 전까지 몇 분을 흔들고 재워야 하나. 자다가 옆으로 누워 자면 머리 모양이 눌린다는데 아이 자는 모양을 봐야 하나 '
자고 일어나면 아이는 신기하게도 울지도 않고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주긴 하는데 , 아이가 말을 못 하니 이 아이의 새벽은 어떠했는지 아직 낯선 이 집이 맘에 드는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는데,
아이의 똥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영광의 수발을 와이프가 넘겨주었을 때, 처음 서툰 손은 아이가 다칠세라 기저귀를 세게 감지도 못하고 사타구니를 깨끗하게 씻어주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부적절한 자격미달의 아빠였을 터. 아이가 약간의 신음을 내면서 몸을 비틀면 ' 크게 혼나는 신입사원처럼 ' 그야말로 안절부절못하는 그 시절의 냄새가 있는 것. 아이는 오늘 하루도 무사했고 , 행복했고 , 완벽했다 는 것을 보여주는 것. 분유를 말끔히 소비한 여전히 미숙한 장기의 배출물. 분유 뚜껑의 성분표에서 확인한 것처럼 아이에게 필요한 단백질, 탄수화물 기타 유기 무기 성분이 골고루 , 마치 음향기기의 컴프레서 효과가 걸린 것처럼 말이다. 적절하게 만들어진 아이의 밥. 그리고 아이의 똥. 아이에게 별일이 없었다고 하는 증거물이다. 신이 맘대로 내던진 흔적을 인간이 들고 '이것은 무엇이오 이것은 나에게 선지하신 것이니 나를 따르시오' 같은 그 증거품처럼 고귀하고 안정적인 것이 바로 밤새 안녕했던 아이의 똥 기저귀다.
그래서 그 냄새를 맡으면 하루가 온전해 짐을 느끼는 것이고, 아침 시작 전 그 냄새를 잘 치우고 출근길에 오른 후 다시 만나는 온전한 내 시간. 내 밥시간에 다시 한번 아이를 그리워하고 감사해 할 수 있었다는 것.
지독하게 변태스러운 이야기처럼 서술했지만 같은 느낌을 가진 엄마 아빠들이 충분히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눈으로 아이를 기억하고 사주 경계를 하고 , 손으로 아이를 지키고 , 소리로 아이의 마음을 구경하는 것처럼
내 코도 오늘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아이를 놓고 출발한 지 15분 만에 다시 그 안녕한 냄새를 맡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에그 머핀이 매일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분명 아니다. 오늘은 날씨도 좋았고, 아들을 놓고 나오는 길 분리수거함에 버리는 박스와 비닐들이 젖지 않아 상쾌했고, 아파트 정문에서 좌회전 신호가 한 번에 걸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날 아이를 생각할 여유까지 있으니 에그 머핀 같이 사소한 것에서 감사함을 느낀 것.
백일 전까지의 일이다. 그즈음 내 모든 신경과 세계는 밤새 뒤척였을 그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에그머핀에서 아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풍선처럼 아들이 생각나는 내 하루의 지점이 달라지고 있으니까. 아들의 우주가 넓어지고 내가 집중해서 아들을 쫓고 있는 중이라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