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일본 여행 - 지방편

일본어 학과 졸업생의 일본 여행 후기

by 잉어

먼저 나는 일본어 학과를 나왔고 일본인 교수님 밑에서 공부를 했던지라 일본을 향한 악감정이 없다는 걸 밝힌다. 지금도 나는 일본을 좋아하고 일본어 학과를 졸업한걸 후회하지 않는다. 한국인 중에서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듯 일본인도 좋은 일본인이 있고 나쁜 일본인이 있었을 뿐이다. 다만 이는 작은 소도시에서 크게 두드러지는 현상이었을 뿐이다.


정확한 지역 명은 쓰지 않겠다. 그러나 인구 숫자가 매우 적었으며 해안가와 크게 접한, 흔히 있는 온천으로 관광사업을 하는 마을이었다. 일본은 비가 자주 왔고 여행 당시도 비가 자주 내렸다. 쏴아아아아- 내리는 비를 우산 밑에 피해 호텔을 찾았다.


나와 함께 여행을 온 파트너는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았지만 당시 나는 일본어를 일 년 정도 배웠던 시기라 제법 능숙했다. 큰 호텔이 분명함에도 안내 데스크엔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없었다만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침 조식을 먹겠다, 온천욕을 희망한다, 체크를 연달아한 나와 파트너는 첫날을 만족스럽게 호캉스로 보냈다.




그 다음날 나와 파트너는 버스로 1시간 거리인 온천을 가거나 메이지 시대 때 사용했을 법한 건물에 들어갔다. 설명문은 한자가 여러개 나열되어 있어 읽기 복잡했으나 편의성을 위한 한자는 대다수 읽을 줄 알아 큰 불편이 없었다. 우리는 한참 여행을 즐기다 녹초가 되어 한 카페에 들어갔다. 작은 구멍 가게같은 카페였다. 그러나 안은 쾌적했고 천장에는 모빌 같은게 달렸다.


나는 파트너를 앉혀두고 다가가 등 뒤의 메뉴판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주문했다.


물론 일본어로 주문했다.


-밋쯔 쿠다사이 (3개 주세요)


회화집에도 실릴 법한 아주 간단한 일본어였다. 아마 일본어 수업을 두 시간 들은 중학생도 쉽게 따라할만한 어휘이리라.


결제를 위해 돈을 꺼내려는데 가게 주인이 나를 향해 되물었다.


-밋쯔? (세 개?)


-하이. 밋쯔 쿠다사이. (네, 세 개 주세요.)


그런데 이번에는 가게 주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지? 케이크가 다 떨어졌나? 아니면 커피콩이 남아나질 않았나?


그 짧은 순간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가게 주인의 태도가 제법 무례하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내가 좀 더 기민했고 자신있는 상태였다면 그때부터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챘을텐데, 겁 많은 과거의 나같으니라고.


주인장은 턱을 치켜 들었다. 그리곤 나한테 한동안 히스테릭을 유발했던 딱 네 글자를 텁텁하게 씹으며 내뱉는 것이었다.


-에이고데. (영어로.)


뭐?


영어로 주문하라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내 일본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점검했지만 내 일본어엔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문제가 있었다면 우리 교수님이 알려주셨겠지, 이 사람이 아니라!


-에이고데스까? (영어로요?)


나는 얼떨결해져 질문했다. 주인장은 얼굴이 전체적으로 붉으스럼한 일본인이었다. 일본어를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닐텐데 어째서 영어란 말인가?


-소우. 에이고데 츄몬시나사이. (그래. 영어로 주문해!)


여기서 짧은 일본어 상식을 이야기하고 가겠다. '~시나사이'는 명확한 명령문이다. 어지럽다 못해 돼지우리같은 방을 본 어머니가 자식새끼에게 내뱉는 말투였으며. 성질 더러운 회사의 부장이 신입을 꾸중하며 하는 어투이기도 했다. 아니, 요즘은 '~시나사이'도 일본에선 잘 쓰지 않는다. 왜냐? 안그래도 젊은 세대가 취업을 하지 않으려 하는 마당에 그런 말투를 쓰면 금방 신입이 도망가니까!


그런데 가게의 주인이 죄 없는 손님에게 명령문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행인 파트너는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타입이었다. 그렇기에 고개만 갸웃일 뿐 깊숙이 참견하지 못했다. 다만 그녀 역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기류를 느낀게 분명했다.


-뭐 문제있어?

-아니야. 잠시만 기다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거 같아서.

-이상한 일이네.


나는 다시 주인장에게 말했다.


-밋쯔. 산 데스. 산. (3개요. 숫자 삼이요, 삼!)


나는 손가락으로 몇 개를 주문했는지 표시했다. 그러나 주인장은 더더욱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에이고데! (영어로!)


아니, 이 사람은 외국에서 온 선교사란 말인가? 도대체 왜 영어를 찾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심지어 주인장은 나를 한 대 칠 거 같았다.


일본은 '상냥하고 깍듯한 영업 태도를 가진 나라'라 자신들을 소개한다. 이는 내 선입견이 아니라 일본 자체가 그리 소개한다. 호텔 안내 데스크 직원을 보면 이 역시 맞는 말이다. 일본은 한국의 몇 배나 되는 존경어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를 보유한 나라다. 까딱하면 사무라이에게 칼 맞아 죽는 사무라이의 나라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계의 인물은 높으신 분의 심기에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그리 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주인장은 대체 뭘까? 만약 그 시절 사무라이가 왔으면 이렇게 굴었을까?


아니, 아닐 것이다.


나는 결국 영어로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미 내 기분은 잔뜩 상해있었다. 이곳 말고 다른 카페가 있었다면, 목이 조금이라도 덜 말랐거나 파트너가 덜 피곤해하는 기색이었다면 나는 이 가게를 박차고 다른 가게로 향했을 것이 분명했다.


-무슨 배짱으로 저렇게 장사하는거야?


블루베리 케이크를 먹으며 나는 가게를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손님이 방문했다. 그 손님은 일본인이었다.


-아레, 코레 쿠다사이. 후타츠데스. (이거랑 저거 주세요, 두 개입니다.)

-하이, 하이. 카시코마리마시타. (네, 네. 알겠습니다.)


울그락불그락했던 주인장의 얼굴이 화사해지며 주문을 받았다. 독불장군 주인장은 일본인 손님 앞에서 굉장히 평온해보였으며 또한 자상했다.


'설마 나한테만 그렇게 대한거야?'


속으로 치받는 열기에 나는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어려보여서 무시한거야? 아니면 비 좀 맞았다고 그러는거야? 속으로 욕을 하는데 한국인 커플이 들어왔다. 그리고 커플이 회화집을 펴고 질문하려는 순간, 주인장이 땡 잡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다시금 내가 들었던 그 말을 똑같이 외쳤다!


-에이고데! (영어로!)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 이 가게 주인장께서 혐한을 하는구나.


외국인 혐오인지 한국인 혐오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나는 남은 잔반을 대충 턱하니 내려놓고 파트너의 손을 잡아 끌었다.


도망치듯이 나온 나는 가게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지네들이 잘못해놓고 왜 지네들이 한국을 혐오하는거야? 이래서 일본인들이란!


혐오는 혐오를 불러온다고. 나는 일본의 한복판에서 일본인 혐오를 부르짖었다!


이게 내 첫번째로 만난 혐한하는 일본인, 디저트 가게 주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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