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전시되는 시대가 낳은 불행
어린 시절, 이런 말 한번씩 들어봤을 거다.
옆집 애는 수학이 백점인데 너는 이게 뭐니!
삶에 지표는 없는데 사람은 점수 매기기 좋아하는 생물인지라. 타인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고 재단하는데 혈안이 됐다. 실상, 사람의 인생은 천 같은 것이라서. 손바닥만한 천으로 가방을 만들 수 없듯 지갑을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 큰 백팩을 만들라하는 꼴인데.
타인이 말했을 때야 무시하기 쉽다. 백점 맞은 옆집애를 시기하기보다 그 말을 하는 부모님께 화가 난다.
옆집 애의 부모님과 내 부모님을 비교하는 일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면서도 입을 닫고 있는건 부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어른이 되니 내 손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있다.
저 사람은 벌써 이십대인데 자가용이 있고 자기 명의의 집이 있다고? 나는 아직 자취도 못해본 사회초년생인데, 부터 시작하여 월급 연애 상황 혹은 화목한 가정 등등...
그런데 다시 한 번 봐보니 어라, 이건 성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어른이 되고 말고 할게 아니라 요즘 세상이 그리 변한 것이다.
SNS의 시대. 핸드폰 하나로 상위 10%의 생활을 엿볼 수 있고 몇 달 사이에 박사 과정을 수료한 천재의 활약상을 청취할 수 있다. 솟아지는 정보 속에서 어느 순간 내 어깨가 무거워지고 입이 다물어진다.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떤 복을 타고 났기에 저리 뛰어난다.
우리는 철수와 영희의 점수를 비교하며 두 아이의 인성까지 확정 짓는 걸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자기 자신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며 평균치라도 아득바득 맞추려 노력하는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미 모두가 그리 하고 있으니까. 완벽한 삶의 정의하고 모방하려 든다.
더 아름다운 생활. 더 뛰어난 생활. 훌륭한 몸과 건강, 매일 아침 직접 차려먹는 레시피와 출근해서 팀장 자리에 앉는 나와 또래처럼 보이는 SNS의 그 사람...
그렇지만 도전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빈번하게 실패하고 만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은 그 삶을 만들기까지의 계단이 있다. 그런데 그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건 힘들다. 또한 인생 살아가며 모두에게 똑같은 도구... 즉 재능과 부,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40대에 진가를 발휘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논문 한 편 읽고 쓰지 않아도 방에서 이불 덮고 자는 걸 가장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기 마련인데. 우리는 최고치의 행복을 정해두고 미친듯이 달린다. 21세기, 그야말로 시기와 질투의 과열 상태.
그리 깎아먹은 자존심과 틀에 맞춘 변형은 사람을 우울증으로 이끈다. 19세기보다 21세기에 정신질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이 이유다.
다른 사람의 빛나는 인생을 마주하여 좌절감과 자괴감이 든다면.
우리는 핸드폰을 끄는 방법을 다시 한 번 배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