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

여섯 번째 인화

by 예쁨
버려진 양심
학교 가는 길
따르릉따르릉 비켜가라고?
비켜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걸
길 위에 버리고 간 양심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 나지요


점자보도블록은,

시각장애인이 발바닥의 감각이나 흰 지팡이로 길의 방향과 위험 요소를 알 수 있게 만든 보도 안내 장치이다.

이처럼 점자보도블록은 그들의 보행에 있어 ‘촉각 지도’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 길이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도 또는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아무렇지 않게 그 선을 침범하곤 한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었다 한들 양심까지 버려두고 가지는 말기를.


그렇게 어려울까?

길 하나 비켜 두는 일.



오백나한
in 강화도, 보문사
말 없는 깨달음
이토록 많건만
세상은 요지경


*오백나한(五百羅漢)이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들 나한(羅漢)을 의미하며, 오백은 수많은 성자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강화도에 있는 보문사에 가면 다양한 표정을 하고 있는 ’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볼 수 있다.

하나하나 세어보지 않아서 진짜 오백 개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직접 보면 무섭지만 표정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친근하기도 하다.


사람의 생김이 모두 다르듯 깨달음 또한 저마다 다른 모양일 것이다.

이토록 많은 깨달음이 있다지만 세상은 여전히 혼돈 속에 있고,

어쩌면 깨달음이란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각자의 몫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




남과 북
in 파주, 통일전망대
가장 가까운
가장 먼 거리


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 보이는 땅이 남한, 오른쪽에 보이는 땅이 북한이다.

거리는 약 2.1Km 정도, 실제적으로 꽤나 가까운 거리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는 대형마트 정도의 거리지만,

망원경으로만 볼 수 있는 저곳은 어쩐지 마트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딸과 함께 파주를 다녀왔다.

방학이면 딸과 함께 단 둘이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고3 때는 가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서울 근교로 떠났지만 아이는 예전처럼 기뻐하는 기색이 없다.


이제는 엄마보다 친구들과의 시간을 더 좋아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스무 살에게 ‘친구’란 존재는 짜릿하고 대단한 세계 그 자체이다.

처음으로 어른에 가까워졌다는 느낌 속에서,

같은 속도로 세상을 배우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바로 친구니까.


친구가 세상의 전부 같다가도,

어느 순간 이유 없이 멀게 느껴지고,

가깝다고 믿었던 관계들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때가 있다.

이십 대는 관계가 단단해지는 시기라기보다,

부딪히고 흔들리면서 ‘진짜 거리’를 배워가는 시기가 아닐까?


가깝고도 먼 너와 나의 거리처럼.


아들과의 대화

참고로 아들과는 물리적인 거리도 멀고, 마음의 거리도 멀다.

가본다하니 거절하고,

보고싶다하니 참으란다.

(흥!)




사랑이 떠난 자리
꽁꽁 닫힌 마음
열어보니
텅 빈 마음만 남아


묵직한 뚝배기 속에 먹음직스러운 스파게티가 담겨 나왔다.

싱싱한 해물 중에도 유독 큰 홍합들은 입을 활짝 열고 통통한 살을 내놓았다.

그 중 입을 꾹 다문 홍합 하나 억지로 열었더니,

닫혔던 마음보다 더 쓸쓸해 보이는 텅 빈 마음이 보인다.


어디 갔니?

네가 품고 있던 사랑.




돌부처
시린 겨울밤,
세상을 채우는
따뜻한 자비의 구멍


야외 온천을 즐기고 싶다는 딸의 말에 노천탕이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프라이빗한 공간을 위해 쌓아 올린 돌벽,

돌벽 사이 구멍으로 뜨거운 물이 콸콸 흘러나와 천천히 탕을 채운다.

촛불까지 밝히자 겨울밤은 한층 더 분위기 있어졌고,

나는 그 구멍에서 부처의 자비를 보았다.


시린 몸을 데워주는 뜨거운 물처럼,

조용히 스며드는 온기 속에서 노곤한 행복감이 찰랑거렸다.

(감사합니타불)





by. 예쁨




누렁이 근황
우쥬 메리미? / 너드미 뿜뿜 / 노천탕 즐기는 중
- 사실은 모태솔로
- 시력 좋은 편, 멋내기용 안경이었음
- 수영복 없는 이슈





독자는 연인이다.

독자를 지루하게 하지 말자.


- 쓰기의 말들, 은유 -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