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봄

여덟 번째 인화

by 예쁨
하얀 입술
순백의 목련
봄비 한 모금에
하얀 입술 달싹달싹
할 말 많은 목련들
소란스럽겠구려


반가운 봄비가 내렸다.

찔-끔.

아쉽게 내린 듯 하지만,

꽃나무들에게는 분명 단비였을 것이다.


어제만 해도 열릴 듯 말 듯 애태우던 목련들

봄비 한 모금에 달싹달싹 움직여 말을 건넨다.


“Good Morning!”



붉은 순환
17th
내 몸 안에 돌고 돌던
붉은 방울들
누군가의 심장으로 건너가
생명을 이어주는
붉은 줄기 되기를


열일곱 번째 헌혈.


돌무렵 아들은 생사를 넘나들며 아팠다.

갑작스러운 고열과 아슬아슬한 수치들로 혈소판 수혈을 받아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었고,

이름모를 누군가의 피가 아들을 살렸다.

경황은 없었지만 작은 몸에 피를 나눠준 고마운 마음만큼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헌혈은 한 번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봉사다.

(헌혈주기마다 친절한 유혹(?)의 문자가 오기 때문이다. 커피 / 치킨 쿠폰 등등)

과정이 간단하고 부담이 적어,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나눔이기도 하다.


아래 링크에 연결된 헌혈앱을 설치하고,

사전 문진 후 예약방문을 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추가로 제공된다.

헌혈 한 번에 건강체크도 되고, 쿠폰도 받고, 새로운 피도 생성되므로

그야말로 일석삼조!

https://apps.apple.com/kr/app/%EB%A0%88%EB%93%9C%EC%BB%A4%EB%84%A5%ED%8A%B8-300%EB%A7%8C-%ED%97%8C%ED%98%88%EC%9E%90%EB%A5%BC-%EC%9C%84%ED%95%9C-%EA%B3%B5%EC%8B%9D-%ED%97%8C%ED%98%88-%EC%95%B1/id1481548384


헌혈에서의 순환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생명이 이어지는 흐름이다.




다시 쓸모
볼트와 너트
버려진 볼트와 너트
서로에게 맞추어
새롭게 태어난
다시 쓸모


종종 들르는 ‘제페토 할아버지’ 카페에 왔다.

적당한 아는 척이 편안함을 주고,

뚝딱뚝딱 주인장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는 쓸모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나 자신의 쓸모도 돌아보게 되는 그런 곳.


그곳에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내 글의 쓸모를 위해서.


https://brunch.co.kr/@0e76dcb1975249f/126




살생현장
잔혹한 현장
사라진 생명
자연이란 매순간
살(殺)과 생(生)의 현장


킁킁.

어디서 츄르냄새가 나는 듯…?

의심 가는 녀석들이 있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으니 용의자를 체포할 수도 없다.


어쩌겠는가,

생명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 모두 생태계의 순환일 텐데.




열 맞춰
대장님, 오셨습니꽈?!
정렬
대기
완료


참새부대인가?


출근길마다 만나는 참새들은 나를 알아보기라도 하는 것일까.

다소 부담스러운 충성모드지만,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귀여움이 수만큼 늘어난다.


참새 병정들,

쉬어!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면 자연은 부활하듯 살아난다.

부활이 곧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도 누군가는 쫓기고 누군가는 사라지는 일이 반복된다.


땅속의 작은 생명들이 깨어나고 땅 위의 생명은 그들을 사냥한다.

아름다운 봄이지만,

목숨을 건 작은 전투들은 쉼 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장면을 생명의 순환이라 부른다.


가장 눈부시면서 가장 잔인한,

봄.






by. 예쁨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