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각 장애인들과 함께 춘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왜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이 여행을 가고 싶어 할까? 다소 불평이 섞인 어리석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인간에게는 많은 감각들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오감이 있을 테고,개인적으로는 영혼에서부터 전해지는 영감(靈感)까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여행을 단순히 시각적인 자극으로만 만끽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각장애인이 4명 그리고 각각 활동지원사 4명 총 8명이 모였다. 이처럼 멀리 가는 여행에서는 2인 1조가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가장 먼저 도착한 내가 예약된 표를 발권하고 어떻게 승차장 앞까지는 갔지만,청량리역에서 ITX는 처음인지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스물네 살인 나의 동행자는 열두 살 이후로 기차는 처음 타본다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기차가 출발하고 서울을 벗어날수록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짙은 초록색의 나지막한 산들과 별빛이 떨어진 듯 반짝이는 물결에 눈이 부셨다. 작은 터널을 몇 개 더 지나면서 점점 어디론가 떠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나는 시각으로 느끼고 있었다. 동행자를 바라보자 그녀는 가만히 기차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눈을 감고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여행을 만끽해 보기로 한다.미세한 기차의 흔들림, 미묘하게 달라지는 냄새, 사람들이 속삭이는 대화에서도 여행에 대한 설렘이 느껴졌다.
오~ 이거 괜찮은데?
만끽도 잠시, 춘천역에 도착하자 이글이글 타는 프라이팬 위에 놓인 버터처럼 몸이 녹아내렸다. 폭염주의보 속에서 우리는 재빨리 버스 정류소로이동했다. ‘재빨리’라고 표현했지만 우리는 결코 재빨리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각자 짝꿍들의 발걸음을 맞추고 최대한 안전을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덥고 추워도 말이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 닭갈비집‘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우선 먹고 보자! 무엇보다 시원한 곳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은 특히 청각과 미각이 발달해 있는 것 같다.그런 의미에서 동행자의 미각은 미슐렝 심사위원과 맞먹는다고 생각한다.그러니 그들이 정한 맛집은 실로 찐 맛집인 경우가 많다.
닭갈비집이 예쁘기도 하다
그렇게 맛집에 도착해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먹고 다음 목적지인 카페로 가기 위해 일어났다. 다시 장소를 이동하기 위해 이번에는 콜택시 두 대를 불렀다. 택시를 부르는 일도 내가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일정을 계획하는데 활동지원사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오히려 여행의 안내자는 그분들이라고 해야 옳았다. 나는 그저 옆에서 같이 걷고 안전하게 안내만 하면 되었다.
이런 곳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싶을 만큼 놀라운, 우리는 커피 맛집? 뷰 맛집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나왔다. 조금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땀이 줄줄 흐르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 왼쪽 팔에 의지해 걷는 동행자의 팔도 더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카페 앞에 강이 흐른다고 이야기해 주자, 물에 빠질 사람은 누구냐~ 물에 빠져도 보이지 않으니 구해줄 수도 없다~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더위에 정신이 나가 농담 한 마디에 웃음은커녕 인상부터 쓰게 되었는데 그분들의 웃음에는 진실한 행복이 느껴졌다.
순간의 불편함으로 작은 행복도 놓치고 마는 내가, 다시 한번 미련하게 느껴졌다.
여행은 보고, 듣고, 먹고,무엇보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추억에 집중할수록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여행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깊은 영감(靈感)을 느낀다.
심각한 무더위에 생각보다 짧은 코스로 여행은 마무리되었지만, 동행자가 다른 감각들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전달했고그녀와 추억을 만드는데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