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야, 안녕?
마흔두 번째 생일,
열여덟 살 딸아이가 손수 차린 <생일밥상>을 받았다.
누군가 나에게 차려준 생일밥상은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이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장기간 집을 비우다 돌아가셨다. 복잡한 유년시절에는 누군가 내 생일을 챙겨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결혼 후에는 내가 챙겨야 할 식구들이 늘어났다. 시부모님의 생일상을 거하게 차려드렸었고, 지금도 신랑과 아이들 생일은 잊지 않고 손수 지은 밥으로 한 끼 차려주고자 노력하지만 거꾸로 내가 시댁식구들이나 신랑에게 밥상을 받아본 적은 없다.
그런데 마흔두 번째 생일날, 나를 위한 온전한 <생일 밥상>이라니! 그것도 요리라고는 불닭볶음면 밖에는 할 줄 모르던 아이가. 전날 저녁부터 마트에 가서 시장을 보고, 미역을 불리고, 고기를 재웠다. 당일에는 새벽에 일어나 계란말이를 해서 케첩으로 하트를 그려 넣는 정성까지 보였다. 잠꾸러기 내 딸은 필시 여우가 잡아먹고 부엌에서 재주를 부리는 저 아이는 백 년 묵은 불여시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미역국은 짰고, 참치 한 캔을 모두 털어 넣은 계란말이는 느끼했고, 제육볶음의 고기는 자르지 않고 볶아 마치 묵은지처럼 길게 늘어졌다. 불여시가 아니라 내 딸이 맞았던 것이다.
그래도 싹싹 긁어 남김없이 먹었다. 울컥, 목대를 타고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려고 밥을 욱여넣고 국물을 들이켰지만 결국 눈물이 터졌다. 식구들은 당황해하면서도 새로운 놀림거리가 생긴 듯 갱년기 아니냐며 놀리기 시작했다.
딸은 내가 제일 받고 싶어 하는 선물, 손편지까지 쓱- 건네주었다. 아이가 준비한 생일기념식은 주인공이 200% 만족하는 완벽한 이벤트였던 것이다. 와중에 신랑은 런던에서 선물이 오고 있다며 속이 뻔히 보이는 시간 벌기를 하고 있었고, 아들은 엄마가 꼭 필요한 것을 사주고 싶다며 끈질기게 갖고 싶은 것을 물어보는 중이었다. (으휴~ 이 집 남자들...ㅎ)
얼마 전 딸 성적표를 보고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대단히 무서웠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참 해맑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엄마가 건강하게만 자라라고 해서 엄마 말대로 따르고 있다며 어깨를 으쓱 거리는 딸이 속 없어 보였지만 내심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진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 보다 더 바라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삶의 방향이라도 잘 찾아가기를 원한다.
아무튼 나는 실로 오랜만에 생일 밥상을 받았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이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눈물겹게 감사하고 행복한 마흔두 번째 생일이다.
To. 안작가님
아이의 당돌한 부름이 고맙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