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봉구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중랑구에 잠시 머물렀고, 결혼 후에는 시댁식구들이 오밀조밀 모여 살던 관악구에 살았다.
강동구로 이사 온 지는 13년째, 불안정한 삶 속에서 가장 마음의 안정을 갖고 살게 된 곳.
내가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이곳은 참 한적한 동네였다. 몇 km만 가면 하남시로 이어지는 서울 끝자락이기도 하지만 5층짜리 낮은 아파트들이 많았고, 그린벨트로 묶인 건강한 땅이 호흡하던 곳이었다. 오래된 가로수길은 조용히 걷기만 해도 좋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재미가 쏠쏠했더랬다. 가까이에 큰 재래시장이 있어 몇 만 원만 가지고 나가도 넉넉한 장보기가 가능하고 공원과 체육시설이 많아 아이들 키우기에 이만한 동네가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동네라 좋았다.
7살이던 아들은 스무 살 성인이 되었고, 5살이던 딸은 열여덟 살 숙녀가 되었다.
지금은 낮은 아파트들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게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빼곡하다. 지하철역 공사로 곳곳에 커다란 구멍까지 생겨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집값은 올랐을지 모르겠지만 내 삶의 질은 떨어졌다. 여유 있는 삶의 원천이던 작은 동네가 사라져 조금 억울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강동구>를 아끼고 애정한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한 아름 안고서 도서관으로 향하던 길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물론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가 아니라 혼자이지만.
혼자이기를 또 얼마나 바랬던가….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과 함께 한 모든 산책길도 영원히 간직해야만 하는 추억이 되었다. 보호소에서 데려온 녀석은 산책을 극도로 싫어했고 집 밖에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파양견이라는 아픈 기억 때문이리라. 그래서 더 마음에 두고 아이를 위해 열심히 산책하고 반드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녀석이 떠나고 나서는 죄책감과 말로 못할 슬픔이 나를 휘감았다. 아직도 몹시 그립지만 나에게 따뜻한 온기를 내어준 녀석에게 다시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리움이 꼭 나쁘고 힘든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워하는 이가 있다는 것 또한 어쩌면 행복이고 감사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오래된 흙냄새가 코끝에 향기롭다. 도보로 한강 걷기가 가능하고, 가로수길은 여전히 시원한 그늘을 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