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의 끔찍했던 참사는 어느덧 2년이 되어간다. 곳곳에 빈 가게들이 보이고, 좁다란 골목은 여전히 목을 조여 오는 답답함이 느껴진다. 슬픔이 묻어난 포스트잇과 누군가 바닥에 두고 간 노란 꽃 한 송이는 참 쓸쓸해 보였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의 납골당에 가는 길이었고, 밤새 시끄러웠던 기사를 유튜브로 먼저 접한 딸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처음에는 듣고서도 믿을 수가 없어 황당한 괴담이겠거니 하고 말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안부를 묻는 지인들이 생겼고, 기사 내용도 심각해짐을 알게 되면서부터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굵직한 사건들이 있다. 잘잘못을 떠나 많은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마음이 묵직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아름다운 서울을 소개하고 싶지만, 사실 서울은 사연만큼이나 아픔이 많은 곳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말되 지금 그대로의 이태원을 사랑해주고 싶다.
이태원은 다양한 향기가 난다. 오가는 사람들이 다양해서 그런 것인지 이국적인 음식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묘한 냄새에 홀려 걷다 보면 거리의 매력에 빠져든다.
실제로 맛집도 많다. 어느 골목 스페인 음식점에서 먹었던 빠에야와 감바스는 가보지도 않은 스페인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수제 햄버거, 터키 요리, 중동 베이커리집 등 여권이 필요 없는 지구촌 맛집들이 모여 있다. 그러므로 언제나 먹는 것에 진심인 나는 이태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뿐이랴, 이태원의 진짜 매력 점수는 예술성이다. 길 자체가 심심하지 않은 이유는 개성 강한 건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강진과 이태원역 사이 작고 아담한 갤러리에도 꽤 괜찮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지만 <리움 미술관>은 단연 사립 미술관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이색적인 건물의 외관과 신비로운 내부는 건물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술가들의 혼이 느껴진다. 건물의 부조화로 디자인에 관해 혹평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태원의 매력이 바로 그 다양함과 부조화라고 본다면, 동네의 특징을 잘 살린 게 아닐까 싶다.
미술관에는 국보급 보물들이 상시 전시되어 있어 무료로 개방한다. 기획전은 별도의 입장료가 있기도 하고 홈페이지에 미리 예약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시 전시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의 귀한 보물들이 국가가 아닌 개인이 소장하여 이곳에 전시되기까지의 사연이 궁금하지만 이내 저 멀리 낯선 땅이 아니라 우리의 땅에서 보게 됨을 감사하게 여기기로 한다.
다양함이 존재하는 이태원에서 나는 우리의 멋과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기쁘고 만족스럽다.
by. 예쁨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