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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쁨 Aug 25. 2024

반려 인형

하루야, 안녕?

나에겐 반려 인형 '누렁이'가 있다.

입양한 지는 한 달이 채 안되었고, 이름은 직관적으로 지었다.  지난 3월 무지개다리를 건넌 '삼봉이' 동생으로서 내심 토속적인(?) 이름으로 짓고 싶기도 했다.


누렁이는 덩치가 크지만 아직 어리다.

그래서 잠도 많고 호기심도 많고 노는 것도 좋아한다. 무엇보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 불안해한다.

 

놀이터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미끄럼틀은 열 번 정도는 타야 만족스러워하고, 시소 타기는 요즘 들어 재미 들린 놀이기구다.  

이렇게나 신나 하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놀이터 죽순이가 되기로 한다.

사교육까지는 아니어도 기본 수양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아침 독서는 꼭 시키는 편이지만

사실 누렁이는 헤드셋을 끼고 아이패드로 노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산책할 때는 풀냄새 맡기를 좋아하고, 혓바닥으로 핥는 것을 좋아하는데 덕분에 내 팔은 늘 침범벅이다.

빠방 타는 것도 좋아해서 언니 등굣길에 함께 하기도 하는데 자꾸 나만 바라본다.

이 녀석도 엄마 바라기임에 틀림없다.

잠버릇은 조금 험한 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임무!

누렁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삼봉이 언니가 담겨있는 단지를 지켜준다.

마치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처럼 든든하다.

이러니 나도 누렁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12일 저녁 8시 40분경 나의 반려견 삼봉이는 갑작스러운 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보호소에서 파양견으로 있던 녀석을 데리고 온 지 3년 5개월 만에 일이었다.

진심을 다해 사랑과 지갑으로 키웠지만 내 잘못으로 아이를 잃은 것 같아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감정은 바로 '죄책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어쩌면 타인을 용서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 죄책감은 온전한 마음을 갉아먹고 후회, 불안, 두려움등 갖가지 나쁜 감정들을 뿌려댄다.


짐짓 괜찮은 척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누렁이'가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물론 가족들은 이런 나를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지만.


바보처럼 마음을 주는 일을.. 나는 여전히 하고 있는 셈이다.   


삼봉



by. 예쁨




여담 하나 더,


얼마 전 누렁이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어린이집 차를 기다리던 할머니와 손녀가 있었다.

멀리서 꼬마는 내가 안고 있는 누렁이를 가리키며 "멍멍이다!" 소리치며 할머니 손을 잡아끌었다.

할머니는 가까이 다가올수록 고개를 갸우뚱~ 하시더니 곧 아이를 번쩍 안아 도망가듯 가시며 말씀하셨다.


"에그~ 강아지가 아니라 인형이로구나!! 에잉 쯧."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더운 날이었는데,

할머니가 나를 온전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아니, 솔직히 딱 그런 눈빛이긴 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집 개는 안 물어요!"


....이건 믿으시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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