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아담한 크기의 서점카페이지만 나는 그곳에서 수 해동안 많은 경험을 하며 인연을 맺고 있다.
작년 이맘때 '동네를 찾아갑니다'라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었다.
최영선 작가님과 8주 동안 같이 책도 읽고, 생각을 나누고, 마지막엔 동네에 관한 글을 써서
책으로 엮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였다.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고 현재 지역 도서관에 비치중이며 물론 개인소장용으로 받기도 했다. 동네 그리기 프로그램과 함께해 책에는 글과 그림으로 동네를 소개하는 귀염뽀짝한 책이 완성되었다. 마침내 11월 즈음에는 출판 기념전시와 낭독회까지 우리만의 작은 전람회를 열었으니 바람길 사장님의 계획적인(?) 프로젝트는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당시 나는 이미 에세이와 동화 두 권의 책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해 출판까지 한 상태였고, 글쓰기에 나름 자신감(?) 같은 게 붙어 있었나 보다. 함부로 나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끝내 나는 부족한 글쓰기 실력을 실감했고, 실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지금 이 순간도 비슷한 좌절감에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는 멈추지 못하고 있으니 아직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를 타고 가는 길은 전용도로뿐이지만, 발이 닿을 수 있는 길은 더 다양하고 흥미롭다. 오르막 길, 내리막길, 골목길, 갈림길 이처럼 길은 모양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기도 하고 목적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학교 가는 길, 도서관 가는 길, 시장 가는 길, 출근하는 길, 집으로 오는 길도 있다.
나는 밖에만 나오면 집이 마렵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제일 좋다. 나가는 길은 몸도 마 음도 다급해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없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나가는 길에 비해 느긋한 마음이 생긴다. 때문에 더 자세히 보고 사유하며 걸을 수 있다.
# 도서관 가는 길
집으로 오는 길을 제대로 느끼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우선 동네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인 도서관으로 향해본다. 가까운 지하철 역에 스마트 도서관이 있지만 직접 도서관을 찾아가 책을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인터넷 장보기가보다 시장에 가서 직접 보고 만져서 고르는 물건이 결코 헛된 발품이 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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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 책을 안고 돌아가는 길.
욕심을 부려 빌려 온 책들이 무겁긴 해도 친구를 품고 간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고 했으니까.
#쉬어가는 곳, WITH PLACE 카페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에 핑크핑크한 간판이 눈에 띄는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예쁘기만 한 카페가 아니라 맛있는 브런치도 있고, 간단히 목을 축이기 좋은 맥주와 와인도 있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이라 마음만 먹으면 자주 들를 수야 있겠지만, 이상하게 그렇지만은 않다. 갑작스레 비가 오거나,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를 때 들른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편함과 불편함이 공존하기 때문일까.
오늘처럼 우산 없이 갑자기 쏟아진 비에 속수무책일 때, 욕심부려 책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한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버선발로 뛰어와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
"자기야~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날라 그래. 오늘따라 사람이 정말 그리웠거든~"
그녀는 격한 포옹을 날리고 금세 따뜻한 라테 한 잔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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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PLACE>는 맛 좋고 인심 좋은 휴게소처럼 잠시 쉬어가기 좋은 카페다.
#길 위에 뿌리내린 나의 집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이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섰을 때는 묘한 안도감에 취한다. 이 길 위에 뿌리를 내린 내 집이 있다. 나에게 들어갈 곳을 확인시켜 주는 집. 내 집에는 편안함과 안정감이라는 뿌리가 박혀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길 위에서 잃었다. 아빠를 먼저 잃었고, 3년 뒤 엄마 역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나에게 길이란 목숨을 앗아가는 위험천만한 곳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길 위를 갈 때는 빠르고 신속하게 오로지 목적지만을 향해 움직였다. 발아래, 길 옆에, 피고 지는 꽃들을 볼 여유가 없었다. 내게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은 오로지 집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도 아니었다. 부모님의 부재 때문에 사는 곳은 늘 불안정했고, 결국 그 어떤 집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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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보호자라는 기둥을 세우고 안정감이라는 뿌리를 내렸다.
#인연의 시작
길 위에 방황하던 시간이 많았기에 제대로 길을 느끼고 걷는 일은 미숙했다. 하지만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산책은 나에게 더 천천히 걷는 법과 오로지 길 위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알게 해 주었다.
3년 전, 보호소에서 파양견 한 마리를 입양했다. 파양견에 대한 오해가 있어 유기견보다 입양이 어렵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졸지에 갈 곳을 잃어버린 경험을 해봤다면 그 막막함과 쓸쓸함을 이해할 것이다. 그 아픔을 알기에 파양견에 대한 관심을 두고 꾸준히 찾아보며 입양까지 결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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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족으로 맞이한 지 만 3년 차가 되어가는 삼봉이를 다시 소개하고 싶다. 여전히 체구는 작지만 살이 올라 통통해졌고, 고집이 세며, 간식 호불호가 강하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경계하고, 코골이가 심하며, 꼭 첫 사료는 이불속에 숨겨놓고 먹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이렇듯 특별함이 가득한 삼봉이의 평생 보호자가 되기로 다짐한다.
#삼봉이와 함께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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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궂은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삼봉이와 산책을 나선다. 누군가와 함께 길 위를 걷는다는 것은 서로의 보폭을 맞춰주고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기꺼이 시간을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다리가 짤막한 녀석의 눈높이에 맞춰 발아래 작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함께 걷는 길이 반복되고 덧대어지고 차곡차곡 쌓여 내가 좋아하는 길로 즐겨찾기가 되었다. 길은 혼자 걸을 때와 함께 걸을 때가 특히 다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것 같다.
"삼봉아~"라고 부르면 뒤를 돌아보는 영리한 강아지.
나는 오늘도 삼봉이와 길을 나서고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온한 삶인지. 녀석과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그림도 넣을 수 있다고 하셔서 글에 맞는 그림도 그렸었다. 하지만 결국책에는 내가 그린 그림들이실리지 못했다. 그림 프로젝트에 참여한 분들의 작품들로채워져야 하기도 하고,다른 작가님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하셨다.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에 그림은 개인소장용으로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초 삼봉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내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는 바람길에서 진행하는 <경계를 허무는 책 1탄>에 참여하고 있다. 점자로 동화책을 만들어 기부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금도 일하는 틈틈이 작업하며 나에게 주어진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요즘은 크고 작은 동네 사업이 활발하다. 눈여겨보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는 프로그램을 골라 참여할 수 있고, 어쨌든 남는 것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