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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쁨 Sep 12. 2024

서울, 아름다운 그곳(11)

어린이대공원의 낮과 밤

출퇴근하는 길에 꼭 지나게 되는 곳이 바로 <어린이대공원>이다.

올해 초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대공원의 겨울과 봄, 여름을 지켜보고 있다.

이곳의 여름은 찬란하다.

특히 정자 앞 연못에서는 연꽃이 절정을 이룬다. (사실은 8월이 한창이지만) 연잎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가까이에서 보면 그 크기에 압도당하기도 하는데 마치 연못 안에 축음기가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어디선가 개구리 왕눈이와 아로미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 추억에 잠겨본다. (개구리 왕눈이를 모른다면 요즘사람)

정문 옆으로 '희망마루'라는 정자에는 사람들이 편히 쉬고 갈 수 있도록 넉넉한 자리가 준비되어 있다. 나도 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쭉 펴고 하늘을 보며 숨을 고르곤 한다. 정자 앞에는 공원을 지키는 커다란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나는 이 친구에게 '용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어쩌다 땅 속에 몸이 반쯤 묻히고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는 걸까? 용용이의 사연이 궁금하지만 갈 때마다 반갑게 인사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대공원 안에는 동물원이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 입장은 불가하지만, 공원 내 살고 있는 고양이들은 어쩔 도리가 없나 보다. 사람을 피하기는커녕 눈만 마주쳐도 발라당 눕고 보는 넉살 좋은 고영희씨들을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가만 보니 츄르 하나 내놓으라는 무언의 협박 같아 나도 모르게 츄르를 바치고 말았지만.


지구의 어느 공간도 인간들만 누릴 수는 없다. 이미 지구는 포화상태이고, 충분히 고달프다. 동물, 식물, 인간, 작은 미생물들까지 지구의 곳곳을 공유하고 상생해야 지구의 남은 여생도 조금은 평화롭지 않을까?

대공원은 꽤 늦은 밤까지 개방된다. (하절기 5:00~ 22:00 / 동물원, 놀이동산 제외)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생각보다 여름밤은 길고 사람들도 제법 많다. 무엇보다 CCTV강국 아니겠는가. 한데 모여 체조하는 무리와 제대로 복장을 갖추고 러닝 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호흡,  부부-연인-친구와 손 잡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여유, 여름밤을 오래도록 즐기는 풀벌레들까지 모이면 대공원의 분위기는 더욱 짙어진다.


희망마루에 앉아 상상나라 건물 외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그림들이 반짝반짝 움직인다.

우주의 별들이, 헤엄치는 고래가, 귀여운 강아지 발자국이...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 속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어린이대공원의 여름은 낮과 밤이 모두 훌륭하다.



by. 예쁨





*지금 우리 눈앞에 겁먹고 정신이 나가버린 고래들을 보고 놀랄 필요는 없다.

지구상의 동물들이 아무리 바보같이 행동하더라도 인간의 광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말이다.


*고래처럼 거대한 생물이 그렇게 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토끼보다 작은 귀로 천둥소리를 듣는다고 하니 신기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당신은 마음을 '넓히려고만'하는가? 그보다는 깊이를 갖추라.


- 모비딕 / 허먼 멜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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