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적인 소양이 부족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가고 싶어지는 곳이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이다.
미술관 앞 탁 트인 뜰이 좋고, 내가 좋아하는 적벽돌 건물이라 좋고, 높다란 천장과 하얀색 도화지 같은 배경은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줘서 또 좋다. 전시는 대부분 무료지만 유료전시장이 있어도 입장료가 소소해서 부담이 없다. 전시를 둘러보고 1층에 있는 테라로사 카페에 앉아 고소한 커피 한 잔까지 들이켜면 기가 막힌다. 운이 좋으면 구름멍 하기 좋은 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추석 연휴 끝이라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워낙 미술관이 커서 사람들에 치인다기보다는 오히려 한 작품 앞에서 찬찬히 볼 수 있어 좋았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세상에 따뜻함 하나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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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측 사진, 정정엽, 나의 작업실 변천사 시리즈 중에서)
엄청난 거장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내가 느끼는 바가 없다면 소용없겠지만 작은 액자 속 한 마디라도 내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 작품이 내게는 명화이고 곧 무형의 가치가 된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한 계절을 보냈다.
수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내 마음을 움직이는 한 마디라도 담겨있는 글이라면, 그 어떤 유명한 작가의 책 보다 훌륭한 작품이 되고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
요즘 들어 브런치에 소비하는 시간이 많은 이유는 바로 그런 맛을 들였기 때문이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 아니라 미술관 위 도서관이다.
현대미술관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정독도서관>이 보인다.
사실 도서관 안에 들어가 본 일은 오래되었다. 보통은 마당에 머무르거나 벤치에 앉아 쉬어간다.
정독도서관은,
경기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캠퍼스를 개수하여 1977년 이후부터 시민들을 위한 공립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나무위키 참조)
생활관으로 쓰이던 건물은 현재 서울 교육박물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봄에는 벚꽃명소로도 유명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도서관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사람들이 많아도 특유의 유유자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책 한 권 펼쳐놓고 읽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강아지나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즐기듯 놀다 가기도 하고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쉬어가기도 하지만 다정하게 손을 잡고 정원을 걸으며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이 제일 예쁘고 부럽다.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사실 책과 미술은 깊은 연관이 있다.
잘 쓰인 글은 예술작품과도 같으며 그림 한 점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듯이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글과 그림을 조화롭게 엮으면 그림책이 완성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어린이 코너에 앉아 그림책을 즐겨 읽고 전시회를 다니면서 글의 소재를 발견하기도 한다.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려 촤르르 소리를 낸다. 도심 소음에 고달팠던 귀가 달팽이관까지 깨끗하게 청소되듯이 시원해졌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앉은 등나무 그늘은 한낮 더위를 쫓아주고, 마음의 근육까지 이완시켜 준다.
고운 색 입고 있을 가을에 한 번 더, 그리고 등나무 꽃이 주렁주렁 피어나 나를 환영해 줄 봄이 되면 다시 와야지.
등나무꽃의 꽃말은 환영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광화문 입구에 들러 북악산을 바라보았다. 가히 산의 기세가 근엄하고 웅장하다. 마치 경복궁을 지키는 든든한 장수 같았다.
고궁은 언제 보아도 참 아름답다. 처마 밑만 보아도 아름다움에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광화문 너머로 느리게 해가 지고 있다.
이처럼 붐비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고궁은 두렵거나 쓸쓸하지 않을까? 내심 마음이 쓰인다.
그의 늠름한 뒤태를 보라!
사람들뿐 아니라 도심의 불빛까지 모두 꺼진다 해도 안심이다.
지켜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이렇게 든든한 것이다. 세상을 지키는 따뜻함 하나가 우뚝 서 있다.
by. 예쁨
눈부신 아침 햇살은 평범한 인간도 예술가로 만듭니다.
사람들에게 빛을 악기로 연주하고, 빛을 황홀한 색채로 변형시킬 수 있는 초능력을 선물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