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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쁨 Sep 30. 2024

쉬었다 가세요

시가 불어와


<쉬었다 가세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지막한 소리

아무도 없는 길 위에

벤치 하나 덩그러니.


한때는 싱그러운 나무였을 것이다.

색색이 옷 입고 뽐내던 꽃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한 자리에 박혀 있는 벤치가 되어

낯선 이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을 내어준다.


가지가 뻗지 않아도

꽃을 피우지 않아도

더 이상 외롭지 않은 이유는

따스한 햇살, 시원한 바람

누군가와 나눌 수 있기 때문이리라.


지쳐 보이는 나그네에게

아픈 다리 쉬어가라고 붙잡는

어머니의 무릎 위처럼


외롭고 쓸쓸한 이에게

다정한 안부를 묻는

친구의 인사말처럼


넉넉한 마음은 여전히 나무와 같아서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일을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오늘도 변함없 그 자리에서

지나는 발걸음 반가워하며

기꺼이 불러 세운다.


“쉬었다 가세요.”


by. 예쁨




아저씨는 벤치 등받이에 등을 기대면서 눈을 감았다.

"이 의자가 그렇게 좋아요?"


"응 이 동네에서 이 의자가 제일 편해 엉덩이에 착 감기는 맛이 있다고나 할까?

너도 한 번 제대로 앉아봐. 그렇게 걸터앉으면 잘 몰라.

엉덩이를 바짝 붙이고 척추를 등받이에 편히 기대는 거야."

정우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해봤다.


"좋지? 누가 안아주는 것처럼 편안하지? 어떨 땐 난로처럼 따뜻하기도 해"


사람들은 벤치, 나무, 길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

아저씨의 노래가 나뭇잎에 흔들리는 소리 같았다.


- 벤치 아저씨 표류하다 / 공지희 -



오래된 철길 옆 재개발로 이웃들은 하나 둘, 아파트촌으로 이사를 가고 용호동은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벤치가 뗏목이라고 말하는 노숙자 아저씨와 어린 정우는 친구가 되고, 어느 날부터 아저씨의 뗏목에 철재 칸막이가 생는데...


<우리 용호동에서 만나>는 용호동의 6가지 이야기가 묶여 있는 옴니버스 형태의 작품이고, 그중 '벤치 아저씨, 표류하다'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야기였다.

나는 책을 읽고서야 치 사이에 있는 쇠 칸막이가 주는 의미 알게 되었다.

노숙자 눕기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칸막이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이 나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기 집에서 잘 것이지, 왜 벤치에서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들이 정말 자기 집이 있다면 위험천만한, 무엇보다 더위와 추위를 고스란히 겪어야 할 '노숙'이라는 방법을 택했겠는가?

벤치 아저씨도 정우처럼 어린 아들이 있는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과연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결코 장담할 수 없다.


나는 길 위에서의 삶을 잘 알고 있다.

다행히도 집 없이 살아 본 적은 없지만, 없는 것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동네 놀이터에 있던 기다란 벤치는 나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주었다. 

그곳에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운 위로가 되었던가.

나는 그 벤치가 밤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마법의 융탄자처럼 되기를 소망했었다.

벤치 아저씨가 그리던 뗏목처럼 말이다.


누구에게나 나만의 벤치가 있을 것이다.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그 벤치에도 쇠칸막이가 설치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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