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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쁨 Sep 28. 2024

싫어증

하루야, 안녕?

자까 - 대학일기






당장 내일부터 중간고사가 시작하는 딸이 거실 한복판에 널브러져 있다.


“뭐 해? 너 할 일 없어?”

“아니, 할 일 많아.”

”그럼, 왜 안 해? “

“하기 싫어.”


저것은 자까님의 웹툰이 아니라

자까님이 우리 집을 도촬 해서 만든 이미지컷일지도 모른다.


*싫어증 증상

싫어증은 돌림병일까?

사실 입 밖으로 낼 수 없었지만 딸의 마음이 내 마음이었고,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은 계절 탓도 해보고,

예전 같지 않은 기력과 정신력 핑계로 나이 탓도 해보고,

바빠진 것 같은 느낌적이 느낌으로 일 핑계도 대 보지만,

사실 모든 것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지가 관리와 자기 계발에 참 열심히다.

운동에, 피부관리에, 투잡-쓰리잡, 틈틈이 공부도 하고, 주식으로 소소하게 용돈을 벌고, 자격증을 따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와중에 봉사도 한다.

과거에 나도 성실히 해내는 일 하나는 누구 못지않게 자신 있었다. '적당히' 하라고 하면 오히려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랬던 내가 방전되고 있는 배터리처럼 희미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싫어증 진단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말하는 딸에게 따끔하게 말할 자신도 없어지다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살고 있는지 팩트체크에 들어가야겠다.

기상 6시 20분 - 씻기 - 아침 식사 - 집 정리 - 아이 등교 - 출근 - 일 - 점심 식사 - 일 - 퇴근 - 저녁 준비 - 저녁 식사 - 부엌 정리 - 씻기  - 늘어져있기, 유튜브 보기 - 취침시간 24시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할 수 없지만 열심히 살았다고 하기에도 부족한 느낌이다.

저 일과가 정말 내 하루의 전부인 걸까?


생각해 보니 나는 '틈'나는 시간에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동하는 시간에 책을 읽고,  틈틈이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읽고 (요즘은 책 읽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다), 브런치 올릴 글도 구상해 보고, 아이패드에 그림 그리는 연습도 하고 있다. 요즘같이 날이 좋은 날에는 하늘멍, 구름멍도 놓칠 수 없다. 하나밖에 없는 자매님과 끊이지 않는 수다도 틈나는 시간에 하는 중요한 일과이다.

나에게는 귀한 주말도 주어진다. 물론 주말에도 주부와 엄마로서 해야 하는 일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지만, 수영을 하러 가기도 하고,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이렇게 자리에 앉아 글을 완성해보기도 한다.


*싫어증 처방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그래서 나는 일기를 쓴다.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과거의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정확한 증거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사진 한 장으로 남길 때도 있고 한 줄로 끝낼 때도 많지만 하물며 나는 오늘 먹고 싸는 일만이 아니라 무려 일기를 쓴 것이다.  그걸로 된 거다.

셀프 처방 끝!


*싫어증 극복

지금 이 순간 격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1시간만 누워있어 보기를 바란다.

목이 마를 것이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휴대폰 속이 매우 궁금하겠지?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할 시간이 없다면, '틈 나는 시간'을 활용하자.

티클과도 같은 시간들이 모이면 생각보다 긴 시간이 주어진다.

하루에 다 하지 못해도 괜찮다.


오늘 요만큼-

내일 요만큼-

모레 ? ?

그렇다면 다시 요만큼-


마침내 나는 해낼 것이다.

될 일은 된다.




#싫어증 증상

#싫어증 진단

#싫어증 처방

#싫어증 극복


by. 예쁨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생명의 작용이 온 우주를 창조하고 보살펴주고 있을진대

내가 힘을 쓰지 않으면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으로 여기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 생각일까?

우리는 어찌하여 모든 것을 제 손으로 통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삶에 좀 더 멀쩡한 정신으로 다가가는 길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가령 삶에 저항하는 대신 그 흐름을 존중하고 자신의 자유 의지로써 그 속으로 뛰어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저절로 펼쳐지는 삶의 질은 어떠할까? 무질서하고 의미 없는 사건이 무작위로 일어날까?

아니면 우주의 완벽한 질서와 의미가 우리의 일상 속에도 강림할까?

한 가지 일이 자연스럽게 다른 일과 맞물리면서 삶은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여정으로 나를 인도했다.


- 될 일은 된다 / 마이클 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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