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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쁨 Sep 24. 2024

능소화

시가 불어와

<능소화>


잠든 엄마 얼굴 가만히 바라본다.

무거운 눈꺼풀 속 고단함 감추고,

갈라진 입술 사이로 빠져나가는 희뿌연 영혼.

손에서 풍기는 쿰쿰한 오징어 냄새,

배꼽까지 내려온 어둠은 주린 배를 뒤틀리게 하지만

엄마는 깨어나지 않는다.


일어나요, 엄마

너무 오래 자고 있어요.

배고파요, 엄마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

같이 가요, 엄마

너무 오래 그리웠어요.  

엄마는 대답이 없다.


떠나야 할까

남아야 할까

떠나는 쪽은 누구이고,

남는 쪽은 누구인가.


뜨거운 불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나,

차가운 강물 속으로 가라앉았나.

우리 엄마 영영 어디로 갔나.


기다림은 씨앗이 되어 발아했고,

그리움은 꽃으로 피어나

담장 밖으로 목 빼고 매달 있다.


여름밤 곱게 피어난 능소화야,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 소녀 닮았구나.



by. 예쁨




아파트 담벼락에 능소화가 피었다.

추위에 약한 꽃이니 갑작스레 떨어진 기온 탓에 지금은 떨어지고 말았을까?

능소화는 꽃이 질 때 송이째 툭 떨어져 지는 모습조차 품위 있다고 하여 ‘양반꽃’이라고도 불렸다.

조선시대 장원급제자에게 임금이 관모에 꽂아주는 어사화로 쓰였으며 그리하여 평민들은 능소화를 함부로 키울 수 조차 없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기품 있는 여름꽃이다.


꽃말은 기다, 그리움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기다리다 꽃이 되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집안에 장남인 아빠가 돌아가신 후, 재산문제로 시끄러운 날이 끊이지 않았다.

엄마는 그 상황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 커다란 짐가방을 든 채 집을 나갔다.

한 달 즈음 소식이 없던 엄마는 뜬금없는 도시에 가있었다. 엄마는 돈을 벌어서 꼭 우리를 데리러 오겠다 약속했다.

기다림에 지쳐 엄마를 만나러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엄마는 바닷가 작은 트럭 위에서 오징어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엄마 곁에는 낯선 아저씨가 함께였고, 하물며 아저씨에게는 내 또래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사춘기 소녀였던 나는 엄마를 이해하기에 부족한 인내심을 갖고 있었고,

만나기만 하면 그리움을 토해내느라 정작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달이 더 지나고, 어느 날 아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엄마의 부고를 알리는 전화였다.  

당황스러웠다.


설마, 우리를 이렇게 두고 간다고?

허망하게- 책임감 없이?

작은 기대조차 무너진 언니와 나는 망연자실했다.


장례식장에서 본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고단하게 잠든 얼굴이었다.

어쩌면 조금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 낯선 도시에 이미 깊은 잠에 든 엄마를 두고 가야 할지 데리고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27년 전의 이야기다.

나는 그때의 엄마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며,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크지만

여전히 그때의 그리움은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어느 여름밤,

담벼락까지 넘어온 능소화가 안쓰러워 그만 눈물이 났다.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 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게임에 손님들이 빠지는 이유를 모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 파친코 / 이민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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