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불어와
달에 한 번은 <청량리역>에 간다.
월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센터가 청량리역 인근에 있기 때문이다.
매월, 그것도 직접 제출하는 일이 다소 불편하지만 파일로 주고받는 일이 당연해진 요즘 직접 담당자를 만나야만 하는 과정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모순된 신선함은 청량리역 주변 모습과도 닮아있다.
유명한 재래시장이 크게 자리하고 있지만, 반대편에는 높다란 주상복합 아파트가 즐비하다.
그 높이가 상당해서 건물의 꼭대기를 보려면 고개를 있는 힘껏 뒤로 젖혀야만 하는데, 내 머리가 조금만 무거웠더라면 뒤로 나자빠지지 않았을까 싶다.
청량리는 어르신들의 핫플로도 유명하다. 종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난다.
청과물 시장으로 꺾어져 뒷골목으로 가면 오래된 가게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데,
한낮부터 술에 흠뻑 취해 갈지자로 걸으시는 할아버지나 주름이 깊게 파인 손으로 야채나 물건을 사고파는 할머니들을 만나게 된다. 찜통 같은 더위나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날에도 거리 위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낡은 간판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50년은 돼 보이는 사진관 앞에 <영정사진 전문>이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보인다. 웃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샘플로 만들어진 영정사진 속 인물들을 보고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버젓이 생존해 있는 인물부터 인간의 영역이 아닌 분들까지 범위가 매우 다양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 대통령 박근혜(응?),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FBI도 모르고 있겠지?), 하물며 부활하신 예수님(응응?)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대담한 광고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어르신들의 익살스러운 농담이라 생각하고 웃을 수밖에.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 한편이 쓸쓸하고 무거워지는지 모르겠다.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처연하다.
<청량리역 1번 출구>
갈라지는 기침 소리,
비틀거리는 주정뱅이,
시큼한 과일냄새,
좁은 골목 사이 고기 누린내,
빨간 중절모 속 흐린 눈동자,
'영정사진 전문' 삐뚤어진 사진관 간판,
뜯겨버린 비둘기 날개 한쪽.
날카로운 빌딩,
텅 빈 가게,
견고한 시멘트 냄새,
날 선 경계심,
잿빛 그늘 아래 뿌려진 한숨들,
시린 바람 불어와
찢어진 현수막은 바람에 나부끼고,
주인 잃은 슬리퍼 한 짝은 말이 없네.
까악-까악
우지 마라 까마귀야
까악-까악
노래나 부르자 까마귀야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니.
by. 예쁨
한국미소문학 문예지에 신인작품상으로 당선되었던 <시> 중 한 편이다.
위에 글처럼 청량리역을 가게 되면서 느꼈던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상패를 받을 때 심사위원 중 한 분이 귀속말로 이 시가 인상 깊었다고 해주셔서 얼마나 용기가 북돋았는지 모른다.
이렇듯 일상 속 모든 것들이 시가 될 수 있다.
발길이 닿는 곳,
눈에 보이는 것,
마음에 새겨지는 무엇.
평범한 일상 속 한 장면이 단초가 되어
시가 불어와 시로 내린다.
당선소감
좋은 글에는 힘이 있습니다.
따뜻한 이야기로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
수줍은 도전에 용기를 주신 한국미소문학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그러므로 행복한 마침표를 찍기 위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지금도 나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마침내 행복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