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도담 Feb 02. 2023

추락하지 않았다는 건, 내일을 꿈꾸고 있다는 증거

주말 내내 열감기를 앓은 지율이는 아직 감기 기운이 남아있어 월요일에 등원을 하지 않았다. 신랑이 오후 반차를 쓰기로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내가 오전만 버티면 되는 상황이었다. 

 

화상 회의할 때, 같이 일하는 분들의 가족이나 반려동물을 잠깐잠깐 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근무지가 자택이다 보니 이런 일은 매우 흔했다. 물론 회의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엄마 회의하는데 옆에 앉아 있을래?”


회의 시작 전에 지율이에게 물어봤지만 관심이 없는 듯, 아이는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집중했다. 그렇게 회의가 시작됐고,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지율이가 바로 옆에 와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용~”


줄곧 관심 없는 척하던 지율이는 막상 회의가 시작되니 궁금했나 보다. 슬금슬금 다가와 인사하며 화면 안으로 등장했다. 동글동글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명랑하게 손을 흔들었다. 업무적인 이야기만 오가던 분위기는 봄 햇살에 눈이 녹듯이 포근해졌고, 어른들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어린 지율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아이 보면서 일하시면......"


회의가 끝나고, 평소 친분이 있던 동료 분이 걱정스럽게 메신저로 물었다. 왜 힘들지 않겠는가. 속으론 이미 울고 있었고 신랑이 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한다는 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는 것인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들지만, 신랑이 오후 반차라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요."


힘든 내색을 그대로 드러내며 위로받고 싶었지만 옆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아이를 보니, 이 또한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대화를 매듭지을 수밖에 없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이렇게 벼랑 끝에 몰린 것만 같은 상황들이 반드시 온다. 피하고 싶어도 절대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 같은 파워로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양육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다. 아이는 엄마를 벼랑 끝까지 몰아가고, 엄마는 그 벼랑으로부터 손바닥 한 뼘이라도 남겨보려고 아이와 씨름하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 부지기수다.


그 누가 벼랑 끝에 서고 싶겠는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 높이를 보는 순간 오금이 저리고 눈물이 찔끔 난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려 추락할 것만 같은 공포는 날 잡아먹는다.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넘어서 '공포'와 흡사한 이 감정을 엄마인 나는 꽤나 자주, 아니 어쩌면 매일매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1년이고 2년이고 계속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샌가 나는 '스스로' 벼랑 끝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괜찮아. 추락만 안 하면 돼.'


그렇다면 나의 사지는 부상 하나 없이 멀쩡할 것이고, 당연히 고통도 없을 것이다. 난 다시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갈 것이 분명했다. 나의 추락을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비록 아이에 의해서 벼랑 끝까지 가게 됐지만 아이는 엄마의 추락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결국 나의 '추락'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다. 


벼랑 끝에 앉아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유난히 더 맛있다. 신나는 노래도 듣다 보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에 서 있단 사실을 나도 모르게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육아의 끝, 즉 하루 끝에 다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인생도 비슷한 것 같다. 만약 하기 싫은 일을 해내고, 싫어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 당신이라면 박수를 쳐주고 싶다. 벼랑 끝에 스스로 걸어간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남들처럼 잘하지 못 할까 자책하는 당신이라면 당장 멈추었음 한다. 포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당신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추락하지 않았다는 건, 내일을 꿈꾸고 있다는 증거다. 


기억하시길, 당신의 추락을 원하는 이는 없다는 것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