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미국 교수가 멀찍이 보는 미국과 중국이야기

한국의 자영업자 - 누구나 꿈꿀 수 있는 함께 사는 사회.

by Dr Sam

한국에 오면 늘 가는 카페가 있다. 대학시절 같이 밴드를 하던 형이 하는 카페이다.

바리스타 대회에서 파이널에 갔을 정도로 커피 수준이 굉장히 높고, 로스팅부터 모든 일을 직접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찾는 나에게 ‘에티오피아 시다마 테라모’ 최상급 G1원두를 추천해 주었다. 시중에서는 100그램에 만원이 넘을 정도로 굉장히 고급스러운 산미가 나는 원두이다. 나도 아직 시음해보지 못해, 자세히 묘사를 할 수 없다.


날이 더워 저녁에 잠깐 치맥을 했다.

형이 물었다. “지금 한국 경제에 가장 필요한 부분을 꼽는다면 무엇을 꼽을 거 같아?”

나는 말했다. “소상공인 부양책 그러고 나서 부동산 정책을 꼽겠어.”


부자나라 클럽과도 같은 OCED국가 중 최고의(?) 자영업자 비율을 자랑하는 인구 4명당 1명이 자영업을 종사하는 기괴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대기업 위주의 정책들은 코로나와 계엄을 지나며, 뇌관 폭발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난 10년도 넘게 형의 커피점을 방문하면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자신의 상황에 대해 입을 열었다. 가뜩이나 작은 소득으로 코로나도 버텨왔던 형의 커피숍은 우후죽순으로 퍼지는 인근 상가의 뺵다방, 메가커피, 우지커피등의 등장으로 수익은 급감했고, 지난 12월 계엄사태로 마이너스 몇 백만 원은 기본인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새로운 제2금융권에서 받은 대출로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대출 금리는 물어도 답하지 못할 정도의 본인도 답답한 수준이었으리라.


나는 말문이 막혔다. 거의 비어있는 술잔을 멋쩍어 들이켰다.
형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웃음은 지친 사람이 마지막으로 꺼내는 방어 기제 같았다. 과연 형뿐일까. 그 웃음 너머에 나는 수많은 자영업자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미용실, 편의점, 분식집, 학원, 카페, 치킨집… 거리마다 빼곡하게 붙은 간판들 속에서 하루하루 빚과 싸우며 버티는 이들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자영업자는 단순한 직업군이 아니다. 이 나라는 정규직을 벗어나면 갈 수 있는 갈림길이 너무 적다.
재취업이 어려운 중장년,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 꿈을 안고 창업을 택한 청년들까지—이들은 모두 자영업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 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오래전부터 금이 가 있었다. 거품은 꺼졌고, 수요는 정체되었고, 경쟁은 과잉이다. 누군가의 창업은 곧 누군가의 폐업을 의미한다.


자영업자의 부채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2024년 기준으로 한국 자영업자의 평균 대출 규모는 1억 원을 넘겼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부채를 안고, 매달 이자와 임대료, 원화 약세에 따른 원자재 값에 허덕인다.


문제는 이 부채가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부채는 심리다. ‘나는 실패하고 있는가?’라는 자기부정, ‘내 가족은 괜찮을까?’라는 두려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무력감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임계점을 넘으면, 경제는 흔들린다.

자영업자의 연쇄 부실은 지역 상권의 붕괴로 이어진다. 상가가 비면 그 옆 가게도 위태롭고, 임대인은 월세를 못 받는다. 임대인이 월세를 못 받는다면, 은행은 연체율을 관리해야 하고, 금융시장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반영한다. 결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게 되고, 금리는 또다시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간다. 어느 하나의 위기는 다른 하나를 부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매번 외면해 온 ‘자영업자 부채’의 파급력이다. 자영업자들이 경제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는 기괴한 경제구조 한국사회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자영업자에 대한 구제책과 부양책이다.


형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커피는 내가 좋아하니까, 버티는 거지. 손님들이 내 커피점이 없어지면 우울할 거 같다니 버텨.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

나는 그 말이 오히려 더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는 지금 자영업자에게 ‘자기 책임’이란 이름으로 사회의 실패를 전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책은 늘 말한다. “포용적 성장.” 그러나 그 포용의 손길은 늘 늦다. 자영업자의 삶이 파산한 뒤에야 겨우 구조조정, 대출 탕감, 임대료 인하 이야기가 나오고, 그조차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한 명의 파산은 그저 수치지만, 한 동네의 파산은 지역의 붕괴이며, 그것은 금융 부실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는 이미 너무 많은 조용한 붕괴들이 있었다.


형의 커피는 여전히 깊고 향기롭다.

그러나 그 향기 뒤에 있는 현실은, 더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자영업자를 위해 ‘버티는 것’ 이상의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들의 생존이 곧 이 나라 경제의 생존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향해야 할 바는 썩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우리 선조는, 가깝게 500년을 지속해 온 조선은 온갖 저항을 이겨내며, 임금의 암살을 막아내며 백성을 위한 “대동법”을 시행했다. 우리 사회의 바탕에는 “더불어 사는 사회”가 깔려있었지, 실패한 자본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온갖 저항을 이겨내며 누구나 꿈꿀 수 있는 함께 사는 사회로 회귀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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