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미국 교수가 멀찍이 보는 미국과 중국이야기

자사주 매입? 소각은 왜?

by Dr Sam

사랑하는 둘째 아들은 축구를 참 좋아한다. 다다음 주면 뮌헨에 갈 예정인데, 이 녀석은 그보다 며칠 전부터 들떠 있다. 좋아하는 김민재 선수가 뛰는 FC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을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 혹시 경기장 보러 갈 수 있어?”
몇 주 전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묻고는 한다.

학교 세미나 일정과 뮌헨 방문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아직 표를 구매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입장권 가격이 오르는 느낌이다. 매일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확인해 보는데, 좌석은 그대로인데 가격만 슬금슬금 올라간다.


그러다 문득, 지금 한국에서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자사주 소각과 관련한 상법 개정이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 이 상황과 너무도 닮아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손님이 몰리는 금요일이면 경기장 주인이 일부 표를 자기 몫으로 슬쩍 빼두었다고 해보자. 관객들이

“표가 얼마나 남았어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거의 다 팔렸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급해지고, 남은 몇 장은 훨씬 높은 가격에 팔린다.


기업들도 종종 자기 주식(자사주)을 사들인다. 뉴스에서 자사주 매입 소식이 전해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오, 이 회사가 자사주를 산다고? 자신 있다는 뜻이겠지.”
그 기대감에 주가도 오르곤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주식을 정말 ‘없애버리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만약 경기장 주인이 표를 찢어버리거나 관객들에게 나누어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보관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표의 수는 줄지 않고, 사람들은 그걸 모르니 진짜 표의 가치도 달라지지 않는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샀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진짜 효과가 있으려면, 그 주식을 ‘소각’ 해야 한다. 즉, 시장에서 완전히 없애야 남은 주식 하나하나의 가치가 높아진다.

다시 말해, 동그란 케이크를 8조각으로 나눈 것과 6조각으로 나눈 것은 한 조각의 크기부터 다르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한국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해 놓고도 소각하지 않았다. 그냥 보관만 한다. 필요할 때 다시 시장에 내놓거나, 총수 일가가 경영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쓰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만 봐도, 매년 수조 원의 잉여 현금으로 자사주를 사들인다. (사실 이 과정은 회계상 이익잉여금 감소 없이 가능하기에, 기업에겐 아주 유용한 수단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매입만 하고 그대로 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자사주는 주가 부양용 쇼이자 지배력 강화용 카드로 활용되곤 한다.


그래서 지금 추진 중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은, 기업을 옥죄는 공산주의식 개입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의 본질을 되살리는 일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자사주를 매입한 뒤 대부분 즉시 소각한다. 특히 일본 기업들은 2023년 이후 자사주 소각률을 높였고, 이 조치는 외국인 투자자 유입과 주가 상승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자사주 소각은 주주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며,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는 단지 재벌 총수의 회사를 넘어서, 주식을 가진 국민 모두의 회사임을 천명하는 법적 장치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은 2025년 2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 지분의 7.75%를 보유하고 있다. 그 말은 곧, 삼성의 주요 주주 중 하나가 바로 우리 국민 자신이라는 뜻이다.


2024년 말 기준으로는 약 1,423만 명의 개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시장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숫자는 지금도 조금씩 늘고 있다. 이제는 단지 기업들이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익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자사주 소각은 그 첫걸음이다. 이것이 곧 공정한 자본주의, 책임 있는 경영, 투명한 시장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과연 이 법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지지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권이 바뀌고, 관심이 사라지면
이 모든 노력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경제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복잡한 수치와 용어, 이념적 프레임에 갇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정직한 규칙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규칙은 우리 아이들의 세상에서도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경제는, 지금보다 더 투명하고, 더 정직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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