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미국 교수가 멀찍이 보는 미국과 중국이야기

늦게 오는 기차, 그리고 국가자본주의의 열차

by Dr Sam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나는 플랫폼에서 20분째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광판의 숫자는 몇 번이나 바뀌었고, 사람들의 한숨은 역 안을 가득 메웠다. 독일 철도(Deutsche Bahn)는 국영기업이지만, 그 권위는 안개처럼 흩날렸다. “국가가 운영한다고 해서 늘 효율적일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그날의 경험은 오늘날 미국이 보여주는 state capitalism(국가자본주의)의 새로운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란 국가가 기업의 소유권·지분·금융자원을 직접 활용하여 시장에 개입하고, 이를 산업 육성·안보·정치적 영향력 확보에 활용하는 체제다.

전통적 자본주의: 민간 기업이 이윤을 최우선으로 움직이는 체제.

국가자본주의: 국가는 주주이자 규제자라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

이 체제는 중국, 러시아의 국영기업 모델에서 뚜렷하게 나타났고, 유럽 역시 에너지·방위산업에서 공공지분을 유지해 왔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에는 미국과 같은 자유시장 국가조차도 국가자본주의적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2년 미국에서 제정된 CHIPS and Science Act는 527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을 골자로 한다.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넘어,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 지분 10%를 직접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대만의 TSMC나 한국의 삼성전자와 같은 해외 반도체 기업에도 전략적 투자를 통한 지분(equity) 확보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기서 반도체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21세기의 원유”다. 2023년 기준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약 5,260억 달러였으며, 그중 TSMC가 파운드리 시장의 약 59%, 삼성전자가 13%, 인텔이 10% 이하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은 기술 설계에서는 강세를 유지하지만, 제조 부문에서는 아시아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현실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정부가 직접 승차권을 쥐고 열차를 이끌려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국가자본주의의 전형적 모델을 구사한다. 국유기업은 정부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움직이며, 금융 시스템 또한 정부의 통제에 깊이 묶여 있다. 유럽 역시 에너지 기업(프랑스의 EDF, 노르웨이의 Equinor)이나 방위산업에서 공공지분을 유지한다.

이제 미국도 같은 궤도에 들어서고 있다. 특히 대만해협의 지정학적 불안정성,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반도체는 더 이상 시장의 효율만으로 맡길 수 없는 영역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플랫폼의 기억은 경고를 준다. 국가는 언제든 정시성보다 정치적 목적을 우선할 수 있다. 국영기업이 효율성보다 고용 안정이나 정치적 인기 유지를 우선하는 것처럼, 미국식 국가자본주의도 시장의 역동성을 희생할 위험이 있다.

경제의 열차는 단순히 늦게 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신호와 선로 전환은 수많은 산업의 연결선을 뒤흔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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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자로서, 독일 역에서의 지연된 기차를 불편한 추억으로 남겼다. 하지만 경제학자로서, 그 장면은 국가자본주의가 가진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상징하는 풍경으로 읽힌다.

여행자는 기다림 끝에 결국 기차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의 열차는 단순히 늦게 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선로로 향한다면, 수많은 승객이 다른 목적지에 내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던진다.
“국가가 직접 기차를 몰면, 과연 더 빨라질까? 아니면 더 자주 늦어질까?”



참고문헌

Bremmer, Ian. The End of the Free Market: Who Wins the War Between States and Corporations? Penguin, 2010.
White House. “CHIPS and Science Act of 2022.” Washington D.C.: U.S. Government, 2022.
Statista, “Semiconductor Foundry Market Share Worldwide, Q1 2023,”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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