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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

생각보다 별일 없다

by 고사리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매니저와 안 좋은 사이를 유지하며, 그래도 내가 잘하면 이겨낼 수 있을 거야를 외쳤는데. 내가 아무리 해도 안된다는 걸 사실 이전부터 알았지만, 차마 그걸 마주하지 못했다. 성격이라면 성격 때문이고, 상황이라면 상황 때문이다.


지난 수요일에 받은 피드백은 여전히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나는 더 이상의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포기한다는 게 나한테는 참 큰 걸음이었는지, 홀가분해져서였을까 아니면 긴장이 풀려서일까 기운이 없고 계속 쳐졌다.


슬픈 건 아닌데, 기쁘지도 않았다. 자꾸 나는 못한다, 패배자인가 싶은 생각이 나를 가득 채웠다. 금요일에 병원에 갔고, 이 상태로 일을 하면 안 된다더라. 주말 동안 고민도 했고, 그래도 일은 마무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오늘도 출근을 결심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있는 매니저와 면담 때문인지, 어제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매니저가 오늘은 또 뭐라고 지적할까 너무 두려웠나보다. 그래서 병가를 써야겠다고 했고, 한 달 정도 쉴까 한다.


주변 아무도 병가를 내보지 않아서 어떻게 하는 거야? 이거 해도 되는 거야? 엄청나게 고민을 하고 매니저랑 이야기도 뜸 들이고 조마조마했는데 생각보다 쉬웠다. 내일 아침 8:30 미팅도 하지 말라고 해서 그냥 내일부터 나는 쉰다. 아직도 패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남아있지만 오늘은 좀 축 늘어져서 쉬려고 한다.


오랜 타지 생활로 몸과 마음에 병이 들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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