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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승철 Aug 02. 2023

독서본색 2

은유의 저서들 = 개념서+사전+자습서 

<글쓰기의 최전선>을 워낙 인상 깊게 읽어서 은유 작가의 책들은 챙겨 보기로 했고 이후 읽은 <쓰기의 말들> 역시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좋은 문장들이 한가득이었다.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앞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특히 위와 같은 구절은 종류와 장르를 떠나서 글 자체를 쓰고자 한다면 누구든 새길 필요가 있는, 말 그대로 ‘쓰기의 말들’이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수학의 정석> 같이 기본원리를 일러주는 책이고, <쓰기의 말들>은 사전처럼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는 책이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자습서 같은 책이에요. 그사이 은유도 달라졌죠. 다른 은유가 쓴 다른 책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이번에 읽은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 나온 저 말은 저자의 친구가 해준 말이란다. 이미 글쓰기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쓴 마당에 이번에 또 쓴다는 것에 근심하는 저자에게 저렇게나 다정하게 말해주었다고. 언급한 세 권의 책을 모두 읽은 입장에서 저 말이 정말 꼭 맞다는 생각에 저자의 능력에 새삼 탄복했고 이 정도면 부러움의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 따라서 겸허한 마음으로 자습서처럼 공부하겠다는 자세로 이번 독서본색은 이 책으로 정했다.     


“글의 시작 부분을 쓰는 게 어렵다”라고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인상 깊었던 상황에서 시작하라”라고 권유한다. 직접 인용으로 시작해도 좋고 묘사로 시작해도 좋지만, 직접 인용은 인용문 자체만 좋고 정작 글의 본문은 인용문과 맞지 않을 수 있고, 묘사는 자칫 장황해져 독자들이 시작부터 지루함을 느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이례적인 경우를 그 시작으로 하면 그 낯선 상황이 독자에게도 새로운 이야기로 다가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용두사미처럼 되지 않으려면 그렇게 인상 깊고 강렬한 첫 부분에서 초래한 상황의 메시지를 잘 추출해 엮어 나가야 하는데 아마 이 부분에서 또 고전하겠지만, 시작부터 고전하는 이들에게는 그래도 상당히 도움 될 말들로 여겨졌다.      


독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유명한 기준인데 좋은 책으로 분류되는 기준 중 하나는 그 책을 읽고 나서 다음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를 일러주는 책이 바로 그렇다. 보통은 읽고 있는 책을 인상 깊게 잘 봤으면 그 책을 쓴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으려 하고 그 역시 물론 좋은 책이었다는 하나의 기준이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이 책 다음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하겠는지를 의도적으로까지 살피려 든다. 해서 참고문헌 목록은 물론 주석과 각주까지 나름대로는 꼼꼼히 챙겨보며 확인하는데 때로는 이런 의도적 노력 없이도 ‘아니, 넌 더 늦기 전에 이 책부터 빨리 다음에 읽어야 해’ 하고 일러주는 경우도 있다. 오늘이 그랬는데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다가 책에서 “마르크스는 상품을 자본주의의 세포”라고 썼다는 부분을 보고 다음에 읽을 책은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자본>을 이번 기회에 더 게으름 피우지 말고 읽자 결심했다. 근래에 김규항 선생의 <자본주의 세미나>를 읽고 그의 북토크도 상경까지 해서 챙겨 들은 마당에 정작 <자본>을 어렵다, 아직은 시기상조다 하고 제쳐두고 있어 가뜩이나 찝찝한 날씨에 마음까지 찜찜했는데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었다. 이럴 땐 독일어를 할 줄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그렇다고 태만에 대한 내 경계심이 이번 기회에 독일어까지 배워야겠다 하는 정도까지 미치진 못했다. 대신에 김규항 선생도 추천한 독일어 완역본을 가격이 솔찬하기는 하지만 질렀다.      

추후 독서본색에서 꼭 다룰 책으로 고종석 선생의 <감염된 언어>가 있는데 내용도 물론이지만 제목 자체가 좋아서 당시 미국 유학 시절이기도 한 만큼 <감염된 정체성>이라는 제목으로다가 한국계 미국인들을 비롯해 속된 말로 ‘순혈’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유형의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실현시키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당연히 그 다짐을 포기하진 않았는데 이 책에서 은유 선생에게 뼈를 맞았다. “관념어를 제목으로 써서 독자의 이목을 끌려면 우리가 명성부터 쌓아야 합니다. 거대담론에 대한 글을 유명 작가가 쓰면 독자들이 읽고 싶어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유혹이 쉽지 않죠. 냉정한 진실입니다.” 그래도 일단 눈에 띄는 제목은 그만큼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점에서 제목에 대한 고민은 마땅히 할 필요가 있다. “글에 담긴 내용을 말하면서 다는 말하지 않는 제목이 좋은 제목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뼈를 때린 후 은유 선생은 귀띔해 준다.     


“타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안 쓴다기보다 조심스럽게 쓴다고 방향을 잡아보기, 다만 심판자가 아니라 관찰자로서 인간 이해에 도움이 되는 인물로 그려내기” “키우는 고양이라고 무심코 썼다가 같이 사는 고양이라고 고쳤다.” “농인은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어를 제1의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같은 부분에서는 역시나 글쓰기를 배우고 익히는 데는 그 끝이 없구나 싶었고, “머릿속에서 상상한 이미지로 비유를 하면 역효과의 위험이 있다”는 부분에서는 평소 알고 있었음에도 되새기자 싶었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는 누군가 “마음이 물안개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라는 문장에 합평 시간에 다른 분이 그걸 보고 “제가 두물머리에 살아서 매일 물안개를 보는데 물안개는 무겁지 않습니다. 가볍고 넓게 피어오르죠” 하고 지적했다는 내용을 언급하며 은유 선생은 그래서 “칠흑 같은 어둠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칠흑을 실제 본 일 없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간 나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비유들을 이래저래 많이 써왔을지 절로 반성했다.      


이 책에서 소개한 다른 일화로 박완서 선생은 책 쓰는 이유에 대해 “나는 이웃들의 삶 속에 존재의 혁명을 일으키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셨단다. 역시 대작가는 남다르구나 싶다가도 ‘존재의 혁명’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이내 궁금해졌다. 깜냥이 부족한 고로 쉽게 생각해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무엇’ 정도로 여겼다. 어떤 책을 읽고 나서 단지 그 책의 내용에 대한 담론보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이렇게 하기로 했다, 저렇게 뭘 만들어 보겠다, 그렇게 쓰면 되겠다 싶어 바로 실행에 옮겼다 등과 같은 반응을 이끄는 것. 이렇게 또 쓰고 보니 정말이지 글쓰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뭐 하나 만만한 게 전혀 없구나 싶으면서도 어쩌면 그렇기에 더 도전 의식이 생기는 지도 모르겠다. 은유 선생은 “좋은 책을 읽거들랑 내게 들어온 가장 좋은 것들을 세상에 풀어놓는다는 보시의 마음으로, 글로 써서 널리 나누시길 바랍니다”라고 썼고 해서 나는 지금 나름대로 이러고 있지만 복잡한 마음임은 사실이다. 그래도 하나 분명한 건 결코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 그래 그거면 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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