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은 안녕하신가요?

인생의 태엽시계를 과거로 또는 미래로 돌릴 수 있다면

by 하운

살다보면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하고는 합니다.


‘인생의 태엽시계를 과거로 또는 미래로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생각에 다다르는 경우는 대체로 상상조차 하기 싫은 아찔한 순간과 마주할 때입니다.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 발표를 망쳤을 때,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사람이 이별을 고할 때, 아끼는 옷을 입고 집을 나선 날에 식사 중 음식물이 묻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게 되며 사고회로가 멈춥니다. 사회초년생 시절, 회사 선배의 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오전 9시의 절망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창밖이 유난히도 밝고 새의 짹짹 울음소리가 들려 직감이 들었습니다. ‘망했다’는 것을요.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 하느님을 원망하다가, 가위로 필름을 자르듯이 그 날을 삭제하거나 스킵하고 싶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쩌면 시간을 거슬러 가거나 앞서 가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불만이나 후회, 결핍이 만들어내는 작용이겠죠. 그래서 시간을 소재로 하는 타임슬립형 영화가 많습니다. ‘어바웃타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리고 ‘클릭’ 등의 명작들이 있습니다. 모두 명작이고 깊은 여운을 주는 영화지만 저는 이 중에서 ‘클릭’을 대학 학부 시절 교양 수업 시간에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일과 승진을 쫓느라 가족을 잃게 되는 내용을 그린 영화인데, 당시 ‘나는 꼭 워라벨을 유지하면서 진짜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아야지’ 다짐했었는데, 약 10년이 지난 지금의 제가 이 다짐을 잘 지키고 있는지는 조금의 의문이 드네요. 여담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 아담 샌들러의 다른 영화 ‘첫키스만 50번째’도 강력 추천합니다. 초등학생 때 TV를 통해 우연히 봤는데 당시 꼬마였음에도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다시 돌아와서, ‘시간이 금’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 영속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지향하며 그것이 곧 최고의 가치라고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다보니 휴일에 계획 없이 넷플릭스만 시청하고 있으면 죄책감이 들어서, 이러면 안 된다 싶어 전공 서적을 펼쳐 공부를 하다 보면 이 좋은 청춘에 좋은 사람 만나지 않고 뭐하나 괴로워하게 되니, 이 무슨 총체적 난국인가요.

평일 회사에서 피라미드마냥 쌓이는 업무들을 해치우기 위해 손가락의 지문이 닳을 것 같이 치열하게 일하는 너무나 바쁜 직장인의 삶을 살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종일 열심히 일했으니 퇴근 후 저녁에는 쉬어야 되며, 주말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며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문득 잘 살아온 게 맞는지 돌아보며, 어쩔 수 없이 기회비용으로 놓쳐버린 것들에 대해 괴로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때 그것을 할 걸, 또는 그것을 하지 말걸’ 하는 등의 고민거리가 우리로 하여금 긴긴밤을 보내게 하죠. 내가 일보다 건강, 사랑, 가족이 중요하다고 주변인들에게 항상 부르짖는 것은 사실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나에 대한 반감의 표출일 테지요. 먹고 살기 위해선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하라던데, 둘 다 취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은 덤이구요. 문득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님이 기찻길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명장면이 생각나네요.

자, 여기서 인생 리모컨의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멈추고, 리와인드 버튼을 눌러 내 삶의 파노라마를 펼쳐볼까요? 우리의 삶은 영원하지 않기에 미래는 짧아지고 과거는 길어지게 되므로, 당연히 갈수록 과거의 추억을 먹고 살게 될 겁니다. 특히 어렸을 적 고민 없이 순수했던 학창시절을 많이 생각합니다. 꿈에도 자주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죠. 졸업하는 꿈을 참 많이도 꾸는데 자유를 갈망하는 욕망이 발현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좋은 기억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내 만화그리기 대회에서 미술에 소질이 없어 별 생각 없이 그림을 그렸는데 최우수상을 수상했던 기억, 여름방학에 선생님의 초대를 받아 댁에서 라면을 먹었던 기억, 체육시간에 세차게 내리는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반 학생들 모두가 즐겁게 축구를 즐겼던 기억은 너무나 생생하게 제 마음 속에 살아있습니다.


그렇지만 모순적이게도, 당시 어렸을 때는 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내 힘으로 돈을 벌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존재가 제게 ‘성인’이었습니다. 그때는 주말에 시간이 안 가서 따분했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성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너희 때가 좋을 때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만 공감합니다. 인생이란 게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요.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다면 다행이지만, 인생에서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고 그래야만 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운이 좋아서, 또는 운이 좋지 않아서 발생하게 된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과거는 마음속에 잘 간직한 채,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려 합니다.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며 사는 ‘진짜’가 되겠습니다. 사람과 사랑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고유성을 존중해 주는 마음을 가질 거구요. 함께 하기 위해 스스로를 덜어 낼 수 있는, 애써 함께 가려고 하지 않아도 함께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될 겁니다. 같이 있으면 제게 기꺼이 물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될 거에요.

하지만 조금만 애정 어린 투정을 해도 된다면,


‘한결같음’을 좋아하는 나인데, 왜 인생은 한결같지 않고 다이나믹하게 흘러가는지.

‘F의 감성’을 좋아하는 나인데, 왜 세상은 나를 ‘T’로 살도록 강요하는지.

열심히 노력하면 다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왜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이 많은지.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는 명작 영화 한편이 삶의 활력소죠.


이 세상의 모두가 안녕하기를 바라며.